절반의 대권 "서울시장엔 내가…"

여야 후보군 속속 출마선언, 당내 공천경쟁 후끈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들의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그간 자천 타천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정계 인사들이 최근 들어 속속 출마 선언을 하는가 하면 당내 후보 경선을 염두에 둔 물밑 경쟁도 치열해 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과 이명박 전 의원의 양강구도로 좁혀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상수 총무와 김원길 보건복지부장관이 두드러지나 아직은 후보군이 완전 가시화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서울시장은 지방자치제도가 자리잡아가면서 ‘소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파워를 가진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고건 현 서울시장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여권의 대권 후보군에 항상 거론되는 현실이 서울시장의 정치적인 비중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여야의 후보군들이 금배지 까지 버릴 각오로 사활을 걸고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도 당선만 된다면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李心을 잡아라"

민주당에 비해 공천 경쟁이 조기에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 전 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대선 싱크탱크격인 국가혁신위의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미 공공연히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상태.

그의 최대 약점은 당내 우호세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워낙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강한 성격인데다 정가에서 활동한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서울시장 출마로 뜻을 굳힌 뒤 당내 ‘인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그는 홍준표 의원의 당선 축하 골프 모임을 주재하며 당내 중진들을 초대했는데 이 역시도 이 같은 투자의 일환이다.

지난 10월 동대문 재보궐 선거 운동과정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 하나. 홍준표 후보가 거리를 돌며즉석연설을 하면서 지원을 나온 이명박 전 의원을 가리켜 “우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를 소개하겠다”고 말해 당이발칵 뒤집혔다. 선거운동중이라 경황이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도를 넘은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홍 의원은 다음부터 이 전의원을 ‘도시개발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서울시장에 나가면 서울의 낙후지역을 잘 개발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뿌렸다. 실제 이 전의원은 동대문을 재보궐선거를 강력히 지원하며 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상당한 인심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의원은 한나라당 중진인 이상득 의원(국가혁신위 부위원장)이 친형이어서 측면지원을 받고 있는 점도 상당한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홍사덕 의원은 미국방문중이던 15일 “정기국회가 끝나는 대로 다음달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도전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의원의 출마는 예상된 것이긴 했으나 이 같은 형태의 출마선언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홍 의원은 그간 출마 문제에 대해 “당과 총재의 뜻에 따르겠다. 내 자신의 용처는 이총재가 정하는 것이다”라는스탠스를 취해왔다. 한마디로 이 총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하면 낙점하는대로, 대선에서 선대위원장 등 중요 역할을 맡기면 맡기는 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마음은 서울시장쪽이 강했지만 ‘명분’을 내세우며 시장 출마에 대한 암시만을 해왔을 뿐이다. 그런 그가 돌연 서울시장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선거전을 점화시킨 데는 맹렬히 뛰고 있는 이명박 전 의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속도전’을펴는 이 전 의원의 공세에 계속 애매한 입장을 보이기 보다는 신속한 의지 표명으로 지지기반을 다지는 것이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홍 의원이 경선이 과열될 경우 이 총재가 중재에 나서 이 전 의원 보다 개인적으로 말하기 수월한 자신을 주저앉힐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미리 쐐기를 박으려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두 사람의 경쟁은 당선가능성과 함께 이회창 총재의 마음이 누구에게 쏠릴 것이냐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많다. 현재로선 홍사덕 의원이 이 총재와의 심리적 거리면에서 더 가까워보이지만 이 전 의원이 워낙 저돌적인 공세로 나서고 있어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다양한 변수 속 오리무중

최근까지 여권내에선 ‘고건 시장 대안 부재론’이 팽배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고건 시장 만한 경륜과 지명도를 갖춘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특히 현재와 같이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하한가를 치고 있을 경우 고건 시장의 재출마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여권의 핵심부에서 흘러나온 일관된 멘트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 같은 이야기들이 급격히 사라지며 힘이 빠지는 분위기이다. 고건 시장은 요로를 통해 ‘재출마 불가’의사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고건 시장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상수 총무와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 이 총무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할 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으며 내달 말 께 출마여부를 최종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3선(중랑갑) 경력을 쌓은 이 총무는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서울시의 행정에 쏟아 붇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상대적으로 야당 후보에 비해 대중적 인기면에서 약세라는 지적도 있지만 “원내총무를 맟아 대과없이 정국을 이끌며 정치력이 검증됐고, 지명도도 상당히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13대 초선 당시 자신과 경쟁관계였던 이인제 노무현 의원 등이 대권 후보군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도 그의 서울시장 도전의지를 촉발하고 있다.

또 의약분업사태를 위해 여권에서‘해결사’로 긴급 투입된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도 서울시장에 대한 뜻을 밝히고 있다.

한 측근은 “앞으로 모든 당내 경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선거는 물론 시장경선에도 출마하겠다는 뜻이다. 김원길 의원이 내세우는 것은 ‘상처받지않은 여당 중진론’이다.

그는 특히 최근 여권의 실정과 당의 혼란상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국민의 정부 초기 정책위 의장을 한 이후 당의 2선에 물러나 있어 현재 벌어지는 여권 난맥상의 책임소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 그는 최고위원 경선 등을 통해 당내의 입지를 다진 뒤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당내에선 현재의 강야(强野)구도를 깨기 위해선 정동영 김민석의원 등 ‘소장파 카드’를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동영 최고위원의 경우 “그 일(시장 출마)은 내일이 아닌 것 같다” 고 일단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고 있으나 완전히 가능성을 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정의원측 캠프의 내부적 분위기이다.

또 김민석 의원의 경우 본인의 입으로 출마한다는 이야기는 한적이 없지만 최근 들어 의욕적인 활동을 보이는 등 나름대로 시장 출마 채비를 서두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여권의 경우 지방선거주자들의 결정은 대선후보 조기 가시화 여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아직은 예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만약 대선후보를 지방선거전에 결정할 경우 낙마한 대권후보들을 대거 지방선거 주자로 전진 배치할 수 있어 아직은 서울시장후보전에 변수가 많아 보인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1/21 14:02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