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살 검찰, 망가진 국정원

국정원 '3대 게이트' 개입의혹, 검찰 축소·은폐 수사 의혹

모든 것에는 분수와 본분이 있다. 조물주는 이빨을 준 자에게는 뿔을 제거하고, 날개를 달아 준 자에게는 다리를 두개만 주었다. 큰 것을 받은 자는 작은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이치다. 녹봉을 받은 선인들은 힘써 농사를 짓지않았고, 상업과 같은 일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 백성과 이익을 다툰다면 백성이 당해 낼 수 없고, 원망이 높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공직자나 정부기관은 국민을 위해 노력해야지 개인이나 기관의 이익을 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같은 일이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과 검찰에서 일어나 국민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두 권력기관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행태를 벌여 국민을 기만했는가 하면 본분을 잊어버린 잘못된 권한행사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야당은 국정원장과 검찰총장의 사퇴요구와 함께 두 기관의 인적 쇄신, 시스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여당도 철저한 수사와 책임 추궁을 요구하는 등 전례없이 강경하다. 게다가 여야가 이용호게이트 특검제를 합의, 두 기관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권력실세 비켜간 ‘짜고 치기’ 검찰수사

검찰이 또 재수사에 나섰다. 재수사는 앞선 수사에 하자가 있기 때문에 이뤄지는것이다. 한마디로 망신살이 뻐쳤다.

이번 재수사는 지난해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진승현 게이트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일부 국정원 간부들의 금품수수및 전방위 로비 부분이다. 때문에 이들의 연루의혹이 제기된 정현준 게이트와 이용호게이트도 자연스럽게 재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검찰 스스로에게도 비난이 가해질 요소가 많다. 다름 아닌 축소수사 부분으로 국정원 간부들에 대한 비호의혹과 직결되는 꼬리짜르기 수사다.

검찰은‘정현준ㆍ진승현ㆍ이용호 게이트’ 등 일련의 금융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축소ㆍ은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축소ㆍ은폐는 이들 사건의 중심에 일부 국정원 간부들과 여당 의원 등이 있기 때문으로 야당은 이들 3대 게이트를 ‘국정원 게이트’라고 꼬집었다. 몸통이 국정원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은 금융비리에 연루된 인사들 가운데 국정원 간부와 여당 현역 의원 등 국가 권력 기관의 ‘힘깨나 쓰는’ 인사들에 대해 제대로 소환 조사 한번 하지않고 덮으려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울며겨자 먹기로 재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진승현 게이트’의 장본인 진씨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MCI코리아 전 회장 김재환씨의 ‘금품 교부’ 진술을 사실상 묵살했다. 김씨는 지난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씨에게서 받은 ‘구명로비’ 자금 12억5,000만원 가운데 5,000만원을 민주당 모의원에게 건네고 4,000만원을 후배인 전 국정원 정성홍 경제과장에게 빌려줬다고 진술했는데도 실제 돈이 전달됐는지와 대가성 여부 등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정황상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려웠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법조계에서는 “돈을 줬다는 진술이 나왔는데 돈을 받은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종의 ‘의도’가 개입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여당 모 의원의 경우 조서에 실명조차 밝히지 않았다.

권력기관 실세들에 대한 검찰의 ‘솜방망이 처리’는 ‘정현준 게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1월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로부터 “국정원 김은성 2차장과 김형윤 경제단장에게 각각 1,000만원과 5,500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은폐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검찰은 결국 위의 사실을 시인했다. 두사람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데 대해 검찰은 김 전 차장 사건은 이씨의 진술만으로는 대가성입증이 안돼 종결하고, 김 전 단장 사건도 ‘중간고리’ 역할을 한 인사들이 모두 도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 9월 김 전단장의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뒤늦게 구속하고 부랴부랴 김 전 차장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그러나 김 전 차장은 대가성 입증이 어렵고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또다시 덮어버렸다. 김 전 차장과 여당의 모의원은 현재 금품수수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 전원을 투입, 1년만에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겠다”고 말했으나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에도 잘못되면 정말 끝장”이라며 정면돌파를 주장하는 일선 검사들이 많다. 핵심 권력자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 가리지 말고 처벌해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검찰의 위신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여당의원과 국정원 관계자의 비리의혹에 대해서만 재수사 한다는 방침에 반발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있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수사하자는 것으로 특검에서 또다시 망신당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검찰 일부에서는 수뇌부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이다. 이 정권 들어 세번째 특검이 도입됐다는 것은 일선 검사들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검찰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이번 위기는 그어느 때 보다 심각하다.


국정원 실세3인방 ‘3대게이트’ 개입의혹

김은성 전 2차장, 김형윤 전 경제단장, 정성홍 전 경제과장 등 소위 국정원의‘실세 3인방’이 ‘게이트 3인방’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는 국정원은 인적쇄신과 기강확립 등 위상 재정립이 불가피해졌다. 비리 혐의가 적발된 이들에 대한 내부징계도 하지 않았던 국정원으로서는 할말이 없는 상황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6일 신건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 2차장 인선문제, 국정원일부 간부의 비리 연루의혹과 관련한 경위 및 수습책, 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기강해이 및 내부 갈등설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인적쇄신책을 마련할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원장은 이날 유사사건 재발방지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조만간국정원 직원들에게 활동지침을 시달, 내부 기강확립에 착수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연말께로 예상되는 중ㆍ하위직에 대한 정기인사시 구체적인 인사쇄신책을 실천에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특성상 베일에 싸여있어야 할 국정원 간부들이 `진승현ㆍ정현준게이트' 등 각종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면서 "인적쇄신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정권 임기말을 맞아 일부 국정원 직원들이 여야 대선 예비주자 등 정치권에 줄을 대는 등 공직기강 해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판단,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이같은 행위를 엄단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 여권 일각에선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정치권 줄대기 방지책 마련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일반 직원도 아닌 경제정보를 총괄하던 고위간부들의 일탈행위는 국가 최고 정보조직인 국정원의 기강해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할 정보조직의 일부 간부들이 ‘양지’에서 사익을 추구한 행위는 국민을 아연케 하고도 남는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끼리끼리’를 든다.

특정고ㆍ특정지역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한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주요 경제정보를 다루던 실세 3인방은 지역적 연고와 학연 등으로 이어저 있어 서로 견제 기능이 없었고 외부의 로비 공세에도 쉽게 노출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 쇄신은 인적 개편으로 특정지역 편중인사 시정, 특정고교ㆍ대학의 일렬배치 배제, 감찰실의 기능 활성화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1/21 14:16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