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서 고속질주하는 한국차

현대·기아차 판매 급신장, 통상압력 피해 미국 현지공장 건립추진

한국차가 미국 시장을 무섭게 공략하고 있다.

911 테러사태와 연이은 탄저균 테러 등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업계 빅3도 국내외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인원 대량 감축을 단행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ㆍ기아자동차를 주축으로 한 한국차들은 대미 수출 사상 처음으로 연 판매량 50만대를 돌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유럽차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미국시장서 최초로 50만대 판매 돌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차가 ‘쾌속질주’를 만끽하고 있다.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내 판매대수는 대미 수출이후 처음으로 지난 10월말 50만대를 돌파, 연말까지 65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1~10월 미국시장에서 판매된 한국산 자동차는 현대차 29만4,523대, 기아차 18만9,424대, 대우차 4만3,169대 등 총 52만7,116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31.1%(12만4,934대) 늘어난 것.

한국차의 쾌속 질주는 현대ㆍ기아차 그룹의 선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현대차는 5월부터 6개월 연속 3만대 이상 판매를 기록했고, 쏘나타(국내명EF쏘나타ㆍ7,768대)와 XG300(국내명 그랜저XGㆍ2,860대), 싼타페(7,768대)는 출시 이후 월간 기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기아차도 지난달 미국시장에서 2만8,276대를 팔아 종전 기록(8월ㆍ2만4,523대)를 갱신하며 월간 최대 판매기록을 기록했다. 이는 전달대비 19.1%, 지난해 10월에 비해서는 무려 78.7% 늘어난 것. 이에 따라 기아차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 연말까지 모두 23만9,019대를 판매, 사상 최초로 연간 기준 20만대 판매를 돌파할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도 한국차의 미 시장 공략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올해 판매목표(32만대)를 초과달성하고 내년에는 이보다 15% 증가한 37만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기아차도 올해 목표(23만대)보다 20~30% 증가한 30만대로 잡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ㆍ기아차 그룹은 예상되는 미국 자동차 업계의 통상압력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내 현지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정몽구 회장은 지난 10일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아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미국에) 현지 공장을 설립해 미국경제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현대ㆍ기아차의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김동진 현대차 사장도 최근 미국을 방문, 현지 공장 유치를 원하는 미국 주지사들을 만났다. 현재 미국 앨라배마주 등 2~3곳이 현대차 현지 공장 부지로 유력시되고 있다.


미 수입차 시장서 유럽차 따돌려

미국내 수입차 분야에서도 한국차가 유럽차를 제치로 2위로 등극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미국시장에서 팔린 현대ㆍ기아ㆍ대우차등 한국산 승용차 및 경트럭은 46만6,000대로 벤츠ㆍBMWㆍ폭스바겐ㆍ포르쉐 등 유럽산(41만4,000대)보다 5만2,000대가 더 팔렸다. 미국 시장에서는 싼타페와 카니발Ⅱ 등의 차종이 경트럭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기간 미국 전체 자동차 판매의 17.9%를 차지하는 수입차 가운데 한국산의 비중은 20.4%로 유럽산(18.2%)을 추월, 절반 이상인 53.3%의 점유율을 보인 일본산에 이어 2위에 올라섰다.

물론 BMW나 벤츠, 폭스바겐 등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되는 연간 30만대가량의 물량을 합칠 경우 미국에서 판매되는 유럽차가 한국산보다 많기는 하지만 순수 수입차 시장에서 한국산이 유럽산을 제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1999년의 경우 유럽산 45만5,000대, 한국산 33만대로 무려 12만5,000대의 차이가 났었다.


‘싸구려’ 차 이미지 벗고 모델 다양화

미국 시장에서의 한국차의 ‘나홀로 질주 ’는 그동안 한국차의 멍에처럼 따라다니던 ‘싸구려차’라는 이미지를 탈피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차는 그동안 미국시장에서 포니와 엑셀로 상징되는 ‘싸구려차’였다. 그러나 99년부터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 가격이 상승하더니 올해는 처음으로 8,000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차가 일본의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의 경쟁 모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협회가 최근 내놓은 ‘자동차 수출의 고부가가치화’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시장에서 현대차 3,000㏄급 XG300 V6의 판매가격은 2만3,994달러로 동급 경쟁차종인 도요타캄리 V6 2만3,640달러에 비해 354달러(1.5%)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월 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싼타페도 2만294달러로 혼다 CR-V(2만390달러)와의 가격차이가 96달러(0.5%)에 불과했다.

또 그동안 미국시장에서 팔린 쏘나타 4D-14(국내명 EF쏘나타ㆍ1만5,494달러)는 닛산 알티마XE(1만5,680달러)보다 186달러 낮았지만 지난 9월 새로 출시된 모델 GLS(국내명 뉴EF쏘나타)는 기본가격이 1만6,999달러로 닛산 차종보다 훨씬 비싸게 책정됐다.


소형위주서 탈피, RV차량으로 다변화

수출차종을 중대형차와 레저용차량(RV)으로 다변화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차의 싼타페. 국내에서는 고급 SUV에 속하지만 미국시장에서는 경쟁차종이 드문 소형 SUV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된 차종이다.

95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싼타페는 현지에서 디자인부터 개발까지 이뤄지는 등 철저히 현지화에 주력한 제품이다.

당시만해도 시장규모가 미미했던 소형 SUV시장의 성장가능성을 간파하고 시장개척에 나선 결과, 지난 8월 수출 월별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하는 등 한국차의 미 대륙 질주를 리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1만달러 안팎의 소형차의 수출이 월별 1만대를 넘어선 적은 많지만 2만달러대의 차가 월 1만대를 돌파하기는 처음이다.

자동차 협회 김소림 부장은 “ 한국차가 미국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은 ‘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점과 함께 수출차종의 다양화와 무이자 할부 판매 등 적극적인 마케팅이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라며“그러나 미국시장에서 판매가 증가하는 만큼 미국차 업계의 한국시장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정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11/21 14:37


박희정경제부 h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