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달라진 김희선의 아름다움

1년 만이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실제 김희선을 다시 만난 것이. 그는 ‘이대현’이란 이름을 기억했다. 어찌 ‘비천무’ 때의 악몽을 잊을 수 있으랴.

‘천하의 인기 스타’가 그것도 무슨 스캔들이나 마약복용 같은 죄를 짓지않고, 연기로 그렇게 혹독한 매를 맞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이제 배우로 불리고 싶다”는 그였다.

전해들은 바로는 한국일보에 쓴 ‘드라마 불패(不敗), 영화 불패(不覇)’를 읽고 그는 너무너무 화가 나 엉엉 울었다고 한다. 눈이 부어 그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것을 쓸때의 심정은 솔직히 이랬다. “저런애가 스타라고 온갖 건방을 떨다니. 얼굴만 갖고 배우가 되겠다고?” 그가 정말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되기를 바랐다. 껍질 뿐인 ‘스타 의식’을 버리기를 바랐다.

만약 그가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볼 줄 알고, 또 자신의 말대로 “배우 김희선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되리라. 혹독한 비판에 감정을 갖기 보다는 그것을 약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그 징후는 곧 감지됐다. 그가 늘 자기 변명처럼 하는 “이미지만 공주파지, 성격은 아니다. 정반대”라는 주장이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다.

새 영화 ‘와니와 준하’를 찍는 동안 영화사 관계자들은 놀라 이렇게 전했다. “말하기 주저하는감독에게 먼저 ‘아무래도 머리를 짧게 잘라야 겠죠? 시나리오를 보니까… ’라고 했어요.” “촬영 2시간 전에 제일 먼저 와서 기다려요.” “다른배우들의 촬영장면 지켜봐요.” “스태프가 ‘희선아’ 하고 편하게 부를 정도였어요.”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김희선이 누군가. 안하무인으로 제작진의 속을 태우던 사람이 아닌가. 한 영화감독은 참다 못해 속이 터져 넘어질 정도였으니.

‘카라’ 때는 “나 몰라라”며 시사회장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비천무’에서는 공주처럼 요란했던 그였다.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그것이 사실임은 같이 출연한 주진모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느낌이들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의 충고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김희선은 ‘와니와 준하’의 시사회가 끝난 후 조용히,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이번 작품에 가졌던 열정에 대해, 그 때문에 더욱 큰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기름기가 완전히 빠진 모습이었다. 와니란 인물의 성격 탓도 있지만, 이제는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비어있었다.

그만큼 ‘와니와 준하’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얘기도 된다. “와니의 그리움, 외로움, 공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이가 비슷한 인물이고. 경험이 있는 사랑 이야기 여서몰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자기에게 따라오게 하지 않고, 자신이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이 비록 몇 걸음밖에 안 된다고 할지라도,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느냐는 생각에 속상해 밤새 울면서 ‘이민이라도 가야 할까 보다’ 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나 이쁘지”의 얼굴 스타가 아닌 배우 김희선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소중하고 아름답다.

“솔직히 그전에는 시간이 없어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는 김희선. 철 없는 스타는 그만큼 정신없이 인기를 즐기고 팔기에 바빴다. 그것이 ‘배우 김희선’을 망치는 길임을 깨닫는 순간 그는 영화를 위해 기꺼이 머리를 짧게 두 번이나 자르고, 몇 달 동안 와니 만으로 살 수 있었다.

“이제는 연기에 열정을 갖고 싶다”고 했다.

배우와 영화속의 인물은 결코 따로 일수 없다. 영화에는 배우의 생각과 삶의 태도와 땀이 드러난다. ‘와니와 준하’에서도 김희선의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은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시작인 셈이다. 이제 그의 나이 스물 다섯이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11/2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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