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냉혹한 무사의 감춰진 父情

■아들을 동반한 검객

일본 영화 보기가 힘들어졌다. 일본 문화 개방 결정 당시의 무성했던 논의와 우려가 무색할 지경이다. 주체적으로 영화를 골라보기 때문이다,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아서다, 국민 감정이 가로 막고 있어서, 등등의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모두 일리 있다고 본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일본 영화의 흥행 부진으로 인해 좋은 일본 영화까지 수입이 안되고 있는 점이다. 문화 개방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양질의 문화, 다양한 문화를 접함으로써 우리 문화 발전에 일조한다는 것일텐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일본 영화의 고전마저 원천 봉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여간 아쉽지 않다.

개방 당시 우려한 것 중의 하나가 일본 무협물이었다. 무사도로 포장된 잔인한 무협물이 넘쳐나 일본 군국주의를 유포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들을 했었다.

그러나 개봉된 작품들이 흥행 성적이라는 말조차 쓰기 어려울만큼 깨지는 바람에, 기왕 수입한 무협물마저 풀지 못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현재까지 개봉된 무협물을 정리해보면. 구로사와 아끼라의 걸작 <카게무샤>, 나카노 히로유키의 MTV 스타일 <사무라이 픽션>, 시노다 마사히로의 화려한 자객물 <올빼미의 성>, 후루하타 야스오의 엄격한 의리파 <무사>, 이노우에 아까라의 맹인 검객시리즈물 <자도이찌>, 오노다 요시미끼의 협객 수사물 <자객>, 가와지리 요시야끼의 잔인하고 선정적인 애니메이션 <무사 쥬베이>로 모두 색깔이 분명한 수작들이다.

미스미 겐지의 1972년 작 <아들을 동반한 검객>(15세, 아이비전)은 만화 원작의 무협물이다. 고이케 가즈오가 이야기를 만들고, 고지마 고세끼가 그림을 그려 일본 최고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성인 만화잡지 '주간 만화 액션'에 연재되었던 <아이 딸린 늑대>가 원작이다.

이 인기 만화는 TV 시리즈물로 28편, 영화로는 7편이 만들어졌는데 <아들을 동반한 검객>은 7편의 영화 중 2번째 작품인 <산즈강의 유모차>를 비디오로 출시한 것.

놀라운 검술 솜씨를 지녔지만, 쫓기는 운명이 된 오가미 이토가 5살된 아들을 나무로 만든 달구지에 태우고 다니며 청부 살인을 해준다는 무협 로드 무비다. 홀 몸으로도 힘든 검객의 길, 아직 말을 못하는 어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떠돌아 다니며 칼을 휘둘러야 하다니.

생전 웃어본 적이 없는 것같은 무표정한 얼굴, 어떤 여성의 유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냉혹함, 그리고 허무가 짙게 깔려있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여정에서 살아남기위한 부자의 애틋한 정이 눈시울을 적신다.

무협물이니만치 기본은 칼 싸움.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바람에 휘날리다 모래 사막을 적시고, 잘린 팔다리와 목이 나뒹구는 장면을 생생하게, 때론 클로즈업 하여 보여주는 잔인함과 과장에 숨이 막힌다.

30여년 전 작품이지만, 엽기적 취향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덕분에 82분짜리 영화가 78분으로 정리되어 출시되었다. 반면 튀는 편집과 음악, 대사는 오히려 이 B급 무협물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하이라이트라 할 마지막 결전시, 주인공의 칼에 목이 베인 자객 저승사자가 쓰러지며 하는 말을 들어보자. "내 목이 겨울 바다처럼 울고 있구나. 다른 자의 목이었어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그 소릴 내 목에서 듣는구나."에도 시대, 야기유 가문 쇼군의 최고 보좌관으로 수많은 닌자를 거느렸으나, 이제는 그 가문에 쫓기는 오가미 이토역을 맡은 와카야마 도미사부로는 유도 4단에다 고무도에도 통달한 검술의 달인.

<아이 딸린 늑대> 시리즈 7편 중 6편의 주연을 맡았고, 리들리 스콧의 <블렉레인>에도 출연한 바 있는 그는 1993년에 사망할 때까지 무려 24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11/21 19:0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