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경제서평] 일에 파묻힌 현대인의 책임과 선택

■부유한 노예
(로버트라이시 지음, 오성호 옮김/김영사 펴냄)

“아! 옛날이 그립다.”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자꾸 과거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비해 분명 경제적으로는 풍요해졌다.

그런데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그 때를 그리워한다. 지금 생활이 옛날에 비해 행복하지 않아서인가. 우리는 입만 열면 가족과 친구, 이웃,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들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왜? ‘바빠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바쁘고, 우리의 생활은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신경제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고 있다. 그런데 그 신경제가 문제다. 신경제가 대단한 만큼이나 우리는 삶의 일부를 신경제에 빼앗기고 있다. 가족과의 삶, 우정,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의 일부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손실은 우리가 얻고 있는 혜택과 함께 발생하고 있다. 이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이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리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어려워지고 있느냐는 물음에서 시작해 신경제가 한 사람으로서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우리가 원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핀다.

그렇다고 이 책은 난해한 경제이론이나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동원하지 않는다. 마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듯 풍부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서는 많은 참고문헌을제시하고 있다.

또 신경제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제3세계가 겪고 있는 불평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신경제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보고있다는 미국인들의 생활 변화에 대한 서술이라는 점도 이 책이 가지는 차별성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새로운 일’은 신경제가 초래한 수많은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신경제는 구매자에게는 천국이지만, 판매자에게는 지옥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매자가 곧 판매자라는 점이다. 2부 ‘새로운 삶’은 새로운 일이 우리 자신과 가족,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느냐에 대한 분석이다. DINS(Double Income, No Sex)란 신조어가 상징적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성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피곤해서다. 3부는 ‘선택’으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택해야 하느냐를 살폈다.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선택은 개인적인 책임이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선택의 틀 안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소외 계층을 위한 여러 사회적 보장 장치를 제안한다. 노동부 장관 출신다운 예리한 통찰이다.

이 책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게 해 주는 일화가 있다. 저자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 출근할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집을 나서기 전에 막내 아들한테 갔다. 막내는 그날 밤 퇴근하면 자기를 깨워달라고 했다.

이유는 단지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장관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저자는 밝혔다.

‘일이 주는 보람이 너무 커서 삶의 다른 부분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던 그였다. 저자가 결론 부분에서 인용한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프로이트),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은 이렇게 힘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탐욕과 야망의 끝은 어디일까?’(애덤 스미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미국사회에 대한 분석이다. 그래서 우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도 꽤 있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가 열심히 추구하는 목표 여서가 아니라, 돈과 명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도 결코 떨어지지 않아 이 책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연 현재의 상태가 우리의 선택이란 말인가? 과연 이것이 성공의 미래(책의 원제목이다)란 말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이다.

저자 라이시 교수는 대학 졸업 후옥스포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배에서 클린턴과 만났다. 그 후 클린턴의 경제가정교사가 됐고, 노동부 장관을 지내다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뉴욕타임스 기고) 사임해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그의 신체조건은? 키는 150센티미터가 안되지만, 허리는 10살짜리 아이보다 훨씬 더 두꺼운 체형을 갖고 있다. 책 25페이지에 있다.

입력시간 2001/11/2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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