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매립·간척사업] 김성훈 전 장관의 김포매립지 '비사'

“만약 IMF 당시 동아건설의 김포 매립지용도 변경 요구를 들어 줬더라면 현 정권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국기를 지킨다는 원칙을 고수했던 당시의 신념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김성훈(62) 전 농림부 장관이 1998년 동아 간척지 용도 변경과 관련한 비사를 털어 놓았다.

김 전 장관은 “최근 김포 매립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다소 왜곡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국민들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당시 이야기를 밝힌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인터뷰 도중 농림부 간부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농림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김 전장관은 요즘 시민단체 활동과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특혜시비에 휘말리는 일

- 최근 농림부의 김포 매립지 용도변경 실시를 놓고 논란이 많다.

“요즘 김포 매립지 문제가 1998년 농림부 장관 재임 당시의 의도와 다르게 보도돼 너무 안타깝다. 최근 언론사들이 농림부가 김포 매립지의 절반 가량을 상업용지로 변경하는 것이 마치 IMF 당시의 입장을 180도 바꾼 것처럼 보도하는데 그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사실 당시의 김포 매립지 문제의 핵심은 개인 기업에 천문학적인 특혜를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용도 변경은 차후의 문제였다.”

- 그럼 당시 농림부도 상업 용지로의 변경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말인가.

“당시에 구체적인 부지 용도 변경 계획은 전문 연구 기관에 의뢰한 용역보고서가 나온 후 결정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농림부가 발표한 계획이 바로 당시 국토개발원에 의뢰해 나온 계획서를 토대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농림부가 당시의 입장에서 선회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당시 실무의 중심에 있던 사람으로서 사실이 잘못 알려져 안타깝다.”

- 용도 변경 불가 의사가 개인적 소신이었나 정치적 논리였나.

“나는 학자로서 시민운동가로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더구나 당시는 국가 녹을 받는 국무위원으로서 기업이나 개인보다 국가를 생각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당시 동아건설에 특혜를 주면 똑같은 조건을 가진 현대건설의 서산 간척지도 분명 같은 혜택을 줬어야 했다. 그 파장을 생각하면 결과는 너무도 명백했다. 더구나 전국 논면적의 4분의 1이 간척지다. 만약 이들까지 용도변경을 요구한다면 어떤 논리로 막을 수 있겠는가?”

- 당시 그룹 해체 위기에 몰렸던 동아 그룹의 전방위 로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언론이었다. 당시 IMF로 외환위기에 처해 있을 때 동아가 용도 변경을 해주면 4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대다수 언론사들이 동아편을 들었다. 다른 부서 장관들도 모두 동아그룹 쪽을 옹호해 농림부는 그야말로 ‘왕따’ 상태였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여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경제 논리를 앞세워 압력을 가해 왔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의원 두 명이 이 문제와 관련된 수뢰 혐의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DJ도 용도변경 반대했다

-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

“개인적인 소신,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지원이 힘이 됐다. 솔직히 이 문제로 김 대통령과 몇 차례 독대 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국가 기틀에 손상이 가거나 원칙을 거스르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히셨다. 그것이 힘이 됐다.”

- 동아그룹 측의 회유는 없었나.

“어느날 동아 최원석 회장으로부터 밖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집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날 저녁 기자들이 모두 철수한 오후 6시께 최 회장과 접견실에서 만났다.

최 회장 측에서는 동아건설 유모 사장, 전 원로 장관이 함께 왔고 우리는 주무 국장이 배석했다. 그 자리에서 최 회장은 ‘40억달러가 들어오니 국익 차원에서 용도 변경을 해달라’며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내용이 실린 일본 신문 기사와 계획서를 보여 주었다.

계획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그룹의 하나인 용역회사가 앞으로 돈을 모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1978년 동아그룹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용도 변경을 안 하기로 약속, 외자 도입의 실현 가능성 부족, 최 회장이 1988년 회장 취임시 매립지를 원예단지와 농업 파크로 조성하겠다고 제2창업 선언에서 공언했던 자료 등을 제시하며 거절했다.”

- 그 일로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다는데.

“김강용 도둑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김씨가 120평 아파트인 우리집에 와서 6억짜리 운보 그림을 훔쳐갔다는 보도가 나갔다. 나중에 경찰 현장 검증에서 밝혀졌지만 우리 집은 48평이다.

사실이 밝혀져 다행이지만 당시에는 도덕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외에도 최 회장의 동생이 사장으로 있는 모주간지가 아들이 이중 국적에 병역 기피자 라는 사적인 기사를 내서 고민했다. 참고로 그 아들은 얼마전 제대 했다.”

- 장관 재임 당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1894년 전봉준 장군이 일으킨 동학 혁명의 빌미가 됐던 오랜 농민들의 숙원인 수세를 폐지한 것과 3대 협동 조합을 개혁한 것이다. 그간 누구도 못했던 우리 농촌의 해묵은 과제를 푼 것이다.”

- 장관 재임시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는 김포 매립지 문제 외에 소값 폭락, 구제역 파동, 산불, 왕가뭄, 농축협 통합등 너무도 많은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다. 당시 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니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못 잤고, 그것도 주로 야전 침대에서 새우잠을 잤다. 끼니를 거를 때도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재임 후반기쯤 잇몸이 부어 오르더니 앞니 9개가 순식간에 빠졌다. 2년5개월5일 간의 재임기간 중 체중이 7kg 빠졌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대통령에게 건강 때문에 물러나겠다고 간청했다. 지금 3차례의 임플란트 수술을 해서 이는 어느 정도 정상을 찾았다. 신경 쓰는 일이 없어선 지 건강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농민에 공포감 심어주는 정부에 아쉬움

- 최근 뉴라운드와 관련된 농업정책의 전환 문제가 이슈가 되는데.

“요즘 정부는 WTO와 관련해 농민들에게 너무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 몇 년 풍작이 들어 쌀 재고가 늘었다고 쌀을 천시하고 풍년을 저주하는 오만을 부리고 있다.

또 UR 협상을 망친 장본인들이 다시 현직에 복귀해 특수 상황이었던 IMF 당시의 농정 조치를 비난하는 것도 안타깝다.”

- 끝으로 한마디 한다면.

“김포 매립지 용도 변경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최원석 회장에게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당시의 결정은 국가 기강과 원칙을 지킨다는 점에서 옳바른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이 정권의 도덕성을 지켜줬다고 할 수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2/05 19:41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