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퀘션스

추종을 불허한 음악적 자유주의자

신중현은 독보적인 음악실력만큼이나 카리스마가 강했던 성격탓에 수시로 가수와 멤버들을 교체하며 수많은 록그룹을 양산했다.

에드훠부터 시작된 그의 록그룹 창단 +이력은 1969년 12월 4번째 그룹 <덩키스> 해산이후 70,71년 2년동안 가히 절정에 달했다.

또한 60년대말부터 펄시스터즈, 김추자를 발굴하면서 히트곡 제조기라는 소리를 들으며 생애 최고의 음악적, 상업적 절정기를 맞았다. 기존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 가수지망생들이 곡을 받기위해 신중현을 찾았다.

주가가 올라간 신중현은 70년 한해동안에만 3개의 그룹을 필요한 목적에 따라 창단해 운영했다. 먼저 명동 오비스캐빈 3층의 코스모스 살롱에 고고클럽을 오픈하며 서울대 출신인 정성조를 영입, 클럽밴드 '신중현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비슷한 시기에 해변가 피서지용으로 급조한 <신중현과 제로악단>도 있었다.

그러나 <덩키스>의 사이키델릭계보를 잇는 진정한 그룹은 리드기타 신중현, 베이스기타 이태현, 현재 국내최고의 재즈드러머로 명성이 드높은 김대환, 오르간 김민랑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4인조 <퀘션스>였다.

그룹 퀘션스는 고정보컬 없이 기존의 김상희,김추자를 비롯 60년대 중반 코끼리브라더스의 보컬을 거쳐 신중현과는 그룹 <블루즈 테트>부터 인연을 맺어왔던 박인수 임희숙과 신인 임성훈, 송만수 등 수많은 객원가수들을 참여시켰다.

첫 활동무대는 70년 3월 시민회관에서 열린 <김상희 리사이틀쇼>. 이미 덩키스시절 김상희를 사이키델릭 록커로 변모시킨 신중현은 한층 무르익은 퀘션스의 사이키델릭연주로 김상희는 물론 고지미자매의 노래에 맛깔을 더해주었다.

퀘션스는 70년5월 11곡으로 구성된 데뷔음반 <퀘션스-유니버샬.KLH15>을 발표했다. 최대 히트곡은 박인수의 <봄비>였다. 덩키스 보컬 이정화가 불렀던 곡을 재취입한 박인수는 다이나믹한 창법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봄비>의 히트는 신중현 음악에 대한 일본가요계의 높은 평가와 관심을 불러왔다. 거액의 개런티와 주택제공 등 부와 명예를 제시하며 신중현 모셔가기 작전까지 펼쳐졌다. 일본 음반사의 유혹은 달콤했다.

하지만 '일본인으로 귀화해야한다'는 쓰디쓴 조건이 뒤따랐다. 넉넉치 않게 살아가는 지금도 단호하게 거절한 당시의 결정을 신중현은 자랑스럽게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정화가 봄비라면 박인수는 소낙비'라는 당시의 평가만큼 박인수의 폭발적인 보컬은 대단했다.

그러나 곡 자체를 놓고 본다면 박인수의 <봄비>가 세션을 능가하는 시원한 보컬에 무게가 실려있는 반면 평가절하되어 잊혀진 이정화의 <봄비>는 오히려 덩키스의 멋스런 연주와 은근한 보컬로 빚어낸 탄탄한 음악적 완성도를 뽐낸다.

60년대중반 미8군시절부터 오랜 무명가수생활을 거친 박인수는 <봄비>에서 보여준 발군의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국 최고의 소울가수로 등극했다. 박인수의 공식데뷔 음반이기도한 퀘션스의 첫 앨범에 수록된 <봄비>외에도 <기다리겠오> 등 숨겨진 미지의 노래 3곡은 듣는 이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젊고 박력있는 소울풍의 창법으로 인기를 끌었던 송만수는 <빗속의 여인> <그대는 바보> 등을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연세대 응원단장으로 사학과에 재학중이던 임성훈.

가수가 되고 싶어 무작정 신중현을 찾아갔다. 젊은 지성인의 저돌적 모습에 반한 신중현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현재 명 TV진행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임성훈은 퀘션스의 객원가수로 데뷔를 한 이후 70년대 중반 <시골길> 등의 히트곡을 내며 인기가도를 달렸던 다재다능했던 가수였다.

2곡을 부르며 참여한 임희숙은 신중현과는 음악적으로 불협 화음이 컸던 여가수. 그러나 독특한 색깔을 지닌 그녀의 수록곡 <내마음 모두 주오>는 신중현풍의 창법이 아닌 임희숙만의 저음 소울창법으로 감탄을 불러낼만큼 맛깔나다.

사실 4명의 객원가수가 참여한 퀘션스 데뷔음반은 새롭게 구성된 라인업의 사이키델릭한 음악적 창의력보다는 대중들의 기호에 맞춘 보컬위주의 앨범이라는 아쉬움 또한 숨기기 힘들다.

퀘션스의 진정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1970년 7월 25일 시민회관 'Go Go Gala Party' 공연음반을 들어야만 참맛을 음미할수 있다.

실황음반인 <신중현의In-A-Kadda-Da-Vida-유니버샬,KLH24>는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몰래 녹음하여 제작한 불법음반'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더욱 귀한 이 음반은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록그룹 명반중의 대표선수로 손꼽힌다.

퀘션스는 덩키스때보다 농도가 더욱 짙어진 애드립을 가미한 음악적 자유로움으로 무장했다. 타이틀곡 <이나가다다비다>는 세계적인 사이키델릭그룹 <아이론 버터플라이>의 모방에 그치기 보다는 원곡을 능가하는 자유자재의 비범한 곡 해석력으로 14분30초동안 듣는 이들을 압도한다.

다소 조악한 녹음상태와 사이키델릭을 이해하기보다는 창법의 흉내에 그친 송만수, 박인수의 겉도는 듯한 이질적 보컬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록그룹 <퀘션스>는 한국 록그룹 사상 최고로 일컬어지는 <더 맨> <엽전들>의 탄생을 위한 튼튼한 징검다리였다.

최규성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12/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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