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네이키드 마야

근자에 볼 수 있었던 예술가의 초상으로, 미국 현대 미술의 거장 잭슨 플록의 삶을 다룬 <폴락>, 미국 B급 공포 영화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 등을 발표했던 영화 감독 제임스 웨일의 말년 삶을 그린<갓 앤 몬스터>, 루이 14세 시절의 궁정 음악가 륄리의 운명을 그린 <왕의 춤>이 있었다.

이들 작품에는 권력자, 현대에 있어서는 비평가와 관객의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예술가의 자기 성찰이 넘쳐난다.

스페인 감독 비가스 루나의 1999년 작 <네이키드 마야 Volaverunt>(18세, 엠브이넷)는 프란시스 고야(1746-1828)의 대표작 '네이키드 마야'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를 추리해내면서, 예술가와 권력의 관계도 탐색한다.

'The Naked Maja'는 'The Clothed Maja'와 쌍을 이루는 고야의 대표작으로, 잠자는 비너스라는 고전적 포즈를 취한 에스파냐 여성에게 매혹적인 관능을 부여한 사실적인 그림이다.

여기서 '마햐 Maja'는 당대 에스파냐의 멋쟁이 여성을 일컫는 단어로, 영어로는 '마야'로 읽힌다. 1800년경 작으로 추정되는 두 작품의 모델은 알바 공작부인으로 알려져왔는데, 루나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한 대본 작업 중, 재상 고도이의 정부였던 페피타 투토가 실제 모델이었음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그림 감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네이키드 마야'의 모델을 잘못 알고 있었다해서 작품 자체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이 어떠한 경로로 그려졌으며,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는가를 아는 것은 그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네이키드 마야>는 그림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그림에 대한 관심을 끄는 데는 일조를 하고 있다.

종교 재판으로 인한 누드화 금지로 자칫 사라질뻔했던 '네이키드 마야'가 무사히 살아남아 스페인에서 가장 잘 팔리는 미술 슬라이드가 되었듯이, 자신의 영화로 인해 '네이키드 마야'가 더 유명해지기를 바란다고 한 감독의 소망은 일단 이루어진 듯하다.

비가스 루나 감독은 1992년 작 <하몽 하몽>으로 베니스영화제 은곰상을 받아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이래, 스페인 사람들의 심리적 공허를 육체 탐닉과 연결시킨 <달과 꼭지> <밤볼라> <골든볼> 등을 내놓았다.

<네이키드 마야>에서도 그림 속 여성 음부와 술잔을 번갈아 클로즈 업시키는 등, 성적 해석을 비추고 있다.

카를로스 국왕과 마리 루이사 왕비(스테파니아 산드렐리)가 집권 중이던 스페인의 황금기인 1802년 8월 23일. 부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사교계의 꽃 알바 공작 부인(아이타나 산체스 기욘)이 자신의 새 저택 완공 기념으로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초대하여 만찬을 열고 있다.

재상 마누엘 고도이(호르디 몰라)와 그의 부인, 그리고 재상의 집시 출신 애인 페티타 투토(페넬로페 크루즈), 화가 프란시스 고야(호르게 페르고리아), 추기경, 황태자 등은 독설을 퍼붓는 공작 부인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다.

이튿날 아침, 자신의 침대에서 시체로 발견된 공작 부인의 사인을 놓고 재상이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고야와 투토가 끼어들면서 왕비와 재상의 음모가 밝혀지는데.

당대 상류 사회와 그림 제작의 비법을 엿볼 수 있는 이 화려한 시대극은 스페인의 대종상격인 고야영화제에서 촬영, 의상, 메이크업, 디자인상 후보에 올랐고, 아이타나 산체스 기욘은 산세바스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12/07 18:1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