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이세돌…재 껄끄러워"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25)

이창호 이세돌을 위한 대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창호는 왕리청(王立誠)이 저우허양(周鶴洋)보다 백 번 낫다. 저우허양은 이창호의 신흥 킬러로 이창호에게 3전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요다(依田紀基) 이후의 새로운 저격수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랭킹 1위.

따라서 왕리청이 얼마나 강한 지는 몰라도 저우허양을 피한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설사 이창호의 입장에서 결승서 만나면 그때는 해볼만한 것이다. 결승은 5번기로 치르기 때문에. 그간 3번의 패배는 모조리 단판승부에서 졌던 이창호는 한시름을 덜었다.

그리고 이세돌의 입장에서는 저우허양이 백번 천번 낫다. 이세돌의 나이가 일천하고 노련미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련한 왕리청보다는 같은 신예급인 저우허양이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예상대로 였다. 4강전이 열리자 이창호는 작년에 일본 최대타이틀 기성을 조치훈에게서 쟁취한 ‘기성’ 왕리청에게 완승을 거두며 개인 통산전적에서도 3전전승을 기록하는 등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이세돌도 중국의 일인자이기도 한 저우허양을 보기 좋게 뉘면서 이창호의 원한(?)을 갚아 주었다. 사실 이창호는 저우허양에게는 약한 면모를 보였고 저우허양이 올라온다면 기실 연구가 좀 필요했던 터였다.

그러나 이창호의 입장에서 보면 이세돌이 올라온 것은 이창호로서는 더 없는 부담이었다. 산을 건너니 물이 또 나타나는 격. 이세돌이 누군가. 17세의 나이 어린 도전자요, 작년 이창호에게서 바둑문화상 MVP를 앗아갔던 절호조의 상승세를 타는 인물이 아닌가. 바둑이 많이 이긴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LG배 결승까지 모조리 불계승을 거두고 올라온 신예 강타자가 아닌가.

그래도 정작 4강전이 끝나자 이창호의 결승상대가 이세돌이라는 것이 잠깐 화제가 되었을 뿐 팬들과 바둑가는 우리선수가 또 우승을 했다는 마음에 씁쓰름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4강에 3명이 올라가고 8강에 6명이 오르는 등 세계대회가 말이 세계대회이지 국내타이틀전보다도 우승하기가 손쉬운 대회가 아닌가 하고 세계대회무상론(無常論) 까지 들먹이며 중국 일본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창호에게는 남들은 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잘 모르는 상대에겐 약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무명기사나 노장 기사할 것 없이 처음 부닥치는 기사라면 어김없이 패하고 마는 묘한 징크스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처음 세계대회라는 것이 생겼을 즈음 루이 9단에게도 패했고 중국의 무명이자 지금은 프로생활을 하는지도 안 하는 지도 모르는 처저우(車澤武) 7단에게도 패했고 그리고 한 물 간 노장인 네웨이핑(攝衛平)에게도 졌고 고바야시(小林光一)에게도 쓴맛을 보았다.

그리고 최근 요다와 저우허양에게까지 이유 없는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일말의 인간적인 약점에 고통받는 이창호임을 감안하면 이세돌은 과연 베일에 가린 얼굴이나 다름 없었다. 더욱이 이세돌이 입단한 지 5년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3판을 두었다. 당시까지 2승1패를 기록했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누구나가 이창호에게 판 맛을 못 보던 때였으니, 그리고 최근에 붙었던 시합은 이창호가 졌다.

또 한가지 무시 못할 요인은 해마다 이창호는 승률이나 다승 같은 랭킹시스템에서 선두권을 유지했었는데 당시까지는 집계한 지 3개월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9승9패를 기록하여 이기는 회수나 지는 회수가 똑같은, 도저히 이창호의 성적표라고는 보여지지 않는 성적이었다.

따라서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세기의 대결이 되지 않겠나하고 전망했다. 그것은 어차피 세대교체의 열망이기도 하지만 이세돌이라는 걸출한 스타탄생의 시발점이 되고 있었다.과연 이창호와 이세돌은 누가 이길것인가.


[뉴스화제]



·이창호 2패 뒤 3연승 대 역전, 명인전 방어

이창호 9단이 2연패 뒤 3연승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명인전 방어에 성공했다. 이 9단은 12월4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제32기 SK엔크린배 명인전 도전 5번기 최종국에서 도전자 유창혁 9단을 맞아 229수만에 흑 3집반승을 거두고 타이틀 4연패에 성공했다.

이날 대국에서 백을 든 유 9단은 흑에게 실리를 내어주며 중앙에 두터운 세력을 쌓았으나, 좌상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손해를 본 데다 중앙마저 무너져 일찌감치 패색이 짙어졌다. 유 9단은 이후 연이어 승부수를 던지며 반전을 꾀했으나, 이 9단이 장고를 거듭하며 침착하게 응수,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었다.

이날 승리로 이창호 9단은 라이벌 유창혁 9단과의 역대전적에서 81승40패를 기록하며 우승상금 3,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 이창호 9단의 도전기(결승전)2연패 뒤 3연승 우승은 이번까지 모두 5차례 있었으며, 그중 4번을 이겼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12/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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