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87)] 엔카(演歌)

문화는 물처럼 흐른다. 막으면 틈을 비집고 스며 들고, 벽이 높으면 돌고 돌아서라도 길을 찾는다. 우리 대중문화가중국과 동남아에서 인기를 끄는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10대를 중심으로 최신곡까지 흥얼거릴 정도로 일본 대중가요의 인기가 높다.

일본 대중문화 수입 개방의 영향도 있지만 그것이 문화의 속성이다. 일본 냄새가 난다고 '동백 아가씨'를 방송금지곡으로 삼았던 70년대에도 젊은이들은 '긴기라긴' 이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현재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가요는 이른바 ‘재팬 팝(Japan Pop)’이다. 제목 자체가 영어로돼 있거나 가사에 영어가 마구 들어 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 아니다. 60년대 후반 포크송 바람과 함께 시작된 일본판 '뉴 뮤직' 운동으로 등장한 새로운 노래를 과거의 노래인 ‘엔카(演歌)’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동백 아가씨'의 방송 금지도 엔카와 너무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동백 아가씨'의 박자와 가락은 틀림없이 우리가 트로트, 일본에서 엔카라고 부르는 가요이다. 우리의 트로트가 식민지 시절 일본의 유행가를 본따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흔한 오해와는 달리 '동백 아가씨'와 같은 짙은 애조의 트로트는 알고 보면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역수출됐다는 것이 일본 가요계의 정설이다.

일본의 엔카가 오늘날처럼 때로는 간드러지고 때로는 가슴을 저미는 애조를 띤 것은 1930년대 작곡자 고가마사오(古賀政男)의 음악을 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인천에서 살았고 선린상고를 나온 그는 식민지 조선의 유행가에 반했고, 이를 본따 일본에는 없었던새로운 형식의 노래를 선보였다. 그의 음악은 대중의 열광을 불렀으며 이후 일본 엔카의 기본형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늘 자신의 음악이 한국에서 나온것이라고 공언했다. 도쿄(東京) 요요기우에하라(代代木上原)에 있는 그의 기념박물관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그러니 왜색(倭色)이란 이유로 멀쩡한 노래에 족쇄를 채운 조치는 당시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정치적 폭압의 단면이자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엔카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음악과 자유민권 사상의 영향으로 태어났다. 그 이전에도 ‘하우타(端唄)’ 등의 유행가가 있기는 했지만 민요 등 전통음악에 바탕했다는 점에서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을 결합해 새로 태어난 엔카와는 달랐다.

1880년대에 태어난 엔카의 보급은 당시 자유민권 운동에 나섰던 청년 정치운동가들, 즉 ‘소시(壯士)’들이 맡았다. 이들은 시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정치·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자유 민권사상을 전파하는 정치 연설을 일삼았다.

이들이 간단한 가락에 계몽적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노래책을 배포한 것은 정치 연극인 ‘소시 시바이(壯士芝居)’ 공연과 마찬가지로 대중 전파력을 염두에 둔것이었다. 이들의 노래는 연설과 함께 불린데다 강한 주의·주장을 담았다는 점에서 '엔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정치 관심이 국내 개혁보다는 대외 팽창쪽으로 기울면서 현실 비판적인 엔카는 퇴조해 갔다.

그 대신 월금(月琴)을 든 서생 차림의 ‘엔카시(演歌師)’들이 거리를 돌며 남녀간의 애정을 주제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레코드와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한 1920년대말까지 엔카 보급의 주역을 맡았다. 하드 터치 대신 소프트 터치 위주의 엔카가 성행했고 일본식 발음으로는 모두 엔카인 염가(艶歌)·원가(怨歌)등의 표기도 등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색채의 노래를 전파한 소에다 아젠보(添田啞蟬坊)나 현실 비판·풍자 노래를 부른 이시다 이치마쓰(石田一松)와 같은 엔카시의 인기에서 보듯 하드 터치의 맥도 이어졌다.

엔카의 현실 비판은 60년대 들어 포크송과 반전·반핵 가요에 그 기능을 넘기면서 완전히 끊겼다. 그 결과 가사면에서 엔카의 원형은 잊혀졌다. 다만 현재 엔카의 거봉으로 꼽히는 기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郞)의 노래에서 보듯 장쾌한 남성적 가락의 흔적은 남아 있다.

오늘날 엔카와 재팬팝을 구분하는 기준은 가락과 창법이다. '파'와 '시'를 뺀 동양전통의 음계를 바탕으로하고, 성대를 떨면서 끊어질 듯 이어가는 창법의 대중가요는 폭넓게 엔카로 분류된다. 그만큼 폭이 넓기 때문에 쉽사리 쇠퇴하지 않는다.

엔카는 지금도 가요시장에서 일정한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가요계의 한해를 결산하는 NHK의 가요홍백전에서 엔카 가수들이 늘 30% 정도는 차지한다.

당장의 인기에 지우치지 않고 다양한 대중가요를 전하려는 TV의 자세와 함께 수요층이 두터운 음반시장의 구조가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젊은 엔카 스타가 꾸준히 배출되고 있으며 재팬팝 스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명력이 길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12/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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