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루머에 '알짜정보' 있다

과장·역정보 난무하는 거래소, 휘말리면 '독' 활용하면 '악'

“증시 풍문 가운데 30%가 사실무근이라고요? 순진한 생각입니다. 적어도 주식 시장에 떠도는 루머 중 50%는 조작된 것으로 봐야 해요. 특히 하나의 재료를 둘이나 셋으로 뻥튀기하는 과장 루머와 역정보까지 포함하면 증시 풍문 가운데 진짜 정보는 10~20%도 안됩니다.”

최근 증권거래소가 증시 풍문 중 33%는 사실 무근이라는 보도자료를 내자 증권사에서 기업 정보와 증시 루머 등을 총괄하고 있는 L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증권거래소의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많은 ‘가짜정보’들이 증시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L팀장의 지적.

그러나 증시 루머는 잘만 활용하면 수익률을 극대화시키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중에서 고급 정보를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 증권사와 투자신탁 운용회사들이 남들보다 먼저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증시 루머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증시 루머의 유형과 사례를 통해 옥석 구별법을 알아본다.


증시 루머 최소한 50%는 가짜

증권거래소는 올해들어 11월말까지 기업 인수ㆍ합병(M&A), 외자유치, 매출, 자산매각 등과 관련, 증시에 떠도는 풍문에 대해 사실 여부를 밝히도록 내린 조회공시 요구가 490건에 달한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그러나 이중 해당 기업이 증시에서 떠도는 소문이 ‘확정된 사실’이라고 밝힌 공시는 69건(14.1%)에 불과했다.

반면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경우가 164건(33.4%)으로 가장 많았고 실현 여부가 불투명한 ‘검토중’이라는 공시도 97건(19.7%)이나 됐다. 한편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추진중’이라는 확인은 160건(32.6%)이었다.

결국 증시에서 떠도는 풍문 10개 중 3개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권거래소 조사 결과는 거래소가 조회 공시를 요구한 풍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증시 전체의 루머 가운데 진짜와 가짜가 얼마나 되는 지를 가늠하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증권거래소가 조회 공시 요구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시장에 이미 소문이 한참 돌고 난 뒤이거나 언론매체 등에 풍문이 보도된 경우이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도 “증시에 루머가 너무 많아 일일이 다 대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공시가 루머를 더 증폭시키는 부작용도 없지 않아 일반인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를 선별, 조회공시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시 전문가들은 거래소 조사결과보다 훨씬 많은 즉 증권가 루머중 적어도 50%는 역정보나 거짓 정보라고 보고 있다.


인터넷 메신저 약인가 독인가

최근 인터넷 메신저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증시 루머의 영향력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인터넷 메신저란 인터넷 상에서 자신이 설정해놓은 회원들과 쪽지 크기의 정보를 빠르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일종의 인터넷 삐삐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미리 ‘그룹’을 설정해 놓은 뒤 e메일을 보내듯 짧은 글을 신속하게 인터넷 상에서 주고 받는 것이다. e메일이 별도의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일일이 열어봐야 하는 반면 인터넷 메신저는 인터넷만 연결된 상태면 화면에 바로바로 손바닥 크기의 글이 뜨도록 돼 있다.

이러한 인터넷 메신저에는 야후 메신저, MSN 메신저, 미스리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증권가에서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메신저는 ‘FN 메신저’이다.

특히 인터넷 메신저는 정보 공유를 통해서 기관에 비해서 정보력이 약한 개인들과 데이트레이더들의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어최근 주식 매매시 홈트레이딩시스템과 함께 필수품이 되고 있다.

인터넷 메신저에 도는 루머의 전파 속도와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6일 우리나라 항공등급이 1등급으로 상향조정 되던 날도 메신저의 위력은 여지없이 발휘됐다.

오전 10시30분부터 ‘항공등급상향조정 발표’라는 짧은 글이 메신저로 돌자 대한항공 주가와 아시아나 주가가 뜨기 시작한 것. 결국 오전11시 건교부가 이를 공식발표하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주가는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역정보 악용돼 선량한 투자자 피해도

그러나 인터넷 메신저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급속도로 확산시킬수 있는 특성 때문에 일부 작전 세력들에 의해 악용되는 것이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역정보를 흘린 뒤 개인들이 달려들면 보유 주식을 매도하고 빠지는 것이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U사의 경우는 인터넷 메신저가 잘못 악용될 수 있는 예를 보여줬다. 데이트레이더 K씨는 지난 4일 이 회사가 곧 외국의 한 증권거래소에 직상장할 것이라는 글을 인터넷 메신저로 받았다.

인터넷으로 기사 검색을 해보니 아직 언론에는 발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호재였다. 주가 그래프를 보니 이미 지난 3일 상한가를 치고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K씨는 ‘이건 대박이다. 상한가 행진을 하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수 주문을 냈다. 그러나 이 주식은 이날 이러한 내용의 기자회견을 발표한 뒤 오히려 주가가 빠지더니 결국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회사도 못 믿어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인터넷 메신저로 유통되는 정보중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안목이 절실하다. 정보를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직접 회사로 전화를 걸어 주식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회사의 주식 담당자는 믿을 게 못된다고 지적한다. 중소형 기업의 주식 담당자는 소위 ‘꾼’들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순진한 개미들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 재료에는 대형 회사도 믿을 게 못 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이미 지난달 23일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의 합병설에 대한 조회 공시 요구가 들어갔다.

하이닉스는 이에대해 합병설은 사실 무근이라고 공시한 바 있다. 그러나 10일만인 지난 3일에는 결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전략적 제휴 또는 여러 형태의 협력방안에 대해 가능한 모든 방안들을 다양하게 검토 논의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시장 참여자들을 완전히 우롱한 것이다.


확인 쉽지 않은 정보 요주의

한편 전화로 확인이 쉽지 않은 수급과 관련된 증시 루머는 대부분 ‘가짜’라는 것이 증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의 재무구조나 경영상의 중대 변화, 매출에 영향을 미칠만한 신규 계약건 등은 사실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A기관에서 B주식을 사 들이고 있다’라든가 ‘세력들이 C주식을 띄우기 위해 물량을 싹쓸이 하고 있다’, ‘유통 물량이 300만주인데 100만주를 누가 매집하고 있어 내주부턴 물량이 없어 주가가 날아갈 것이다’등의 내용은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수급과 관련된 루머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자유치’도 작전 세력에게 자주 이용되는 메뉴이다. 외자유치 루머를 퍼 뜨린 뒤 조회공시 요구가 들어오면 ‘추진중이나 결정된 바 없다’고 해 루머를 더 증폭시킨 뒤 다시 조회공시가 나오면 ‘계속 추진중’, 또는 ‘구체적인 내용은 언제까지 재공시 하겠음’등으로 밝히는 것이다. 확인이 쉽지 않고 여러 차례 써 먹을 수 있어 작전 세력들에게 자주 악용된다는 것이다.


루머 의존 대박 의식 버려야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시 루머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은 결국 직접 기업을 탐방해 확인하는 것 밖에 없다”며 “마치 자신이 제일 먼저 루머를 알게 된 것처럼 들 떠 성급하게 매매하기 보다는 언제나 기업 가치를 보고 적정주가를 따진 뒤 신중하게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증시에 루머가 퍼질 수 있는 것은 투자자들이 대박을 노리고 루머에 매달리기 때문”이라며“이러한 투자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루머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일근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12/11 18:28


박일근 경제부 ik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