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발되는 선심성 정책] 표 향한 정치권의 '눈 가리고 아웅'

쏟아지는 감세관련 법안, 여야 정책의 초점은 '표심'

정부가 지난달말 고속철도 2단계사업 조기 착공 계획을 발표했을 때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서로 제각각 내심 쾌재를 불렀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 사업이 ‘꼬여 있는 영남권 민심을 누그러뜨리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 정권 들어 꾸준히 추진해온 영남권 사업이 드디어 결실을 거두는구나’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번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 조기 착공은 정부측 이최종 결정을 내렸지만 실은 한나라당이 자신의 텃밭을 지키기 위해 이 정권 들어 줄기차게 밀었던 사업이다.

이번에 정부가 조기 착공을 추진하게 된것도 한나라당이 지난 2년여 동안 국회에서 이 지역에 대한 예산 지원을 강력히 주장해 미리 부지 구입 작업을 마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은 여야의 구분이 따로 없다.


지역 달래기 경쟁

10ㆍ25 보선의 승리로 한나라당은국회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야당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특히 민주당 내홍 여파로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내놓음으로써 사실상 정국의 주도권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 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위상 강화는 최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부가 내놓은 새해 예산안이 ‘선심성 위주로 과도하게 책정됐다’며 5조~10조원 정도의 삭감을 주장하고있다.

그 대안으로 한나라당은 감세 정책을 들고 나왔다. 정부 여당이 직접 돈줄을 쥐고 흔드는 것은 안되지만, 국민의 부담을 덜어 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라도 민심을 끌어 안겠다는 계산이다.

한나라당은 이처럼 여당의 선거 전략으로 이용될 수 있는 재정 확대는 극구 반대하면서도 국민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며 정부ㆍ여당의 정책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고속철도와 인천국제공항 조기 착공이다. 그간 사사건건 반대를 하던 야당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거의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칫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가 돌아온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다.

현재 정치권은 대선과 지방 선거를 앞두고 선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야는 현행 소득 구간별로 10~40%로 돼 있는 종합소득세율을 9~36%로 평균 10% 정도 하향 조정하고 양도소득세 기본세율도 종합소득세율에 맞춰 동일하게 내리자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선거를 겨냥한 선심정책은 결국 서민들에게 짐이 되고 고스란히 돌아오고 말 것이다.<김명원/사진부 기자>

여당은 소득세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이 주목적이고, 야당은 지지층인 보수 계층의 구미를 맞춰 주겠다는 의도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이자소득과 배당 소득에 대한 세율도 현행 15%에서 13%로 2% 포인트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야의 선심성 감세 정책은 내년 경기 전망을 살펴볼 때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현재 여야가 당 공식 기구인 정책위원회를 통해서만 내놓은 세제 개편안만 해도 2조원 이상의 세수입이 줄어든다.

특소세의 경우 민주당 안은 7,000억원, 한나라당 안은 3,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한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율 2% 인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약 1조5,00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줄어 든다.

여야 당 공식 기구를 통한 것 외에도 민주당 강운태 김민석, 한나라당 이규택 허태열 의원 등이 농ㆍ축산업의 각종 면제 혜택에 관련한 조세특례 제한법까지 치면 현재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계류 중인 감세 관련 법안은 모두 30여건에 달한다.

정당은 정당 대로, 의원은 의원대로 각종 선심성 법안들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 심화될 듯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내년 경제 성장률이 예산 수립 당시 전망치인 5%에서 최소한 1% 포인트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정도의 하락 만으로도 7,000억원 이상의 세수 감소가 발생하기때문에 추가 감세 정책은 결국 세수 결손을 더욱 확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경제부도 “내년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1조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여 내년에 4%대의 GDP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정부 예산안 보다 약 5조원 가량은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적자 보전을 위해 국채 발행 규모를 8조원으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럴 경우 예산 운용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재정 적자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 했다.

국회 과반수에 1석이 부족한 136석을 보유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감세 법안 외에도 그간 쟁점이 됐던 각종 법안들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국회 재경위에 내놓은 법안은 핵심 개정 법안은 국세기본권. 한나라당은 ‘세무 조사가 정치적 목적 등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며 세무조사권 남용 금지, 조사 대상및 불성실 납세자 선정 기준 제정, 그리고 과세 정보 국회 제공 의무화 등의 규정을 추진중이다.

또한 검찰 등 수사기관이 법관의 영장 없이 금융감독원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방식의 계좌추적을 금지하는 등 금융 거래 비밀 보장을 대폭 강화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도 준비중이다. 이외에도 대북 지원시 5억원 이상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는 남북협력기금법의 개정도 추진중이다.

앞서 한나라당은 다수의 힘을 앞세워 현 정부가 추진한 62세 교원 정년 관련법을 63세로 연장하는 개정을 추진하다 자민련의 반발과 국민 여론에 밀려 유보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내년 선거에서 정부 여당이 집권당 프리미엄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싹은 단호하게 차단하되 지지 기반인 보수 세력을 위한 법안 개정에는 두팔을 걷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당리당략에 매달릴 것인가?

이런 거대 야당 한나라당의 정책에 대해 당 내부에서 조차 비판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상당수 의원들은 사실상 국회를 좌우하는 거대 야당이 김정일 답방, 북한 쌀지원, 교원 정년연장, 추경 예산안 처리, 건강보험 재정통합 백지화, 이용호 게이트 국정조사 철회 방침 등 주요 현안에서 당론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정부의 선심성 예산을 따지고 막는 것이 민생 정치지 표심을 의식해 정부가 하는 사업을 무조건 뒷바라지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

시민단체들은 “감세 정책과 같은 법안 개정은 장기간에 걸친 국가 경제 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추진돼야 하는데 여야가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선심 정책을 펴고 있다”며 “정치권은 당리 당략이 아닌 대국적 차원에서 비전 있는 국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12 16:26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