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01년] '게이트'에 갇힌 대한민국

진승현·정현준·이용호 '3대게이트', 비리·혼란·분열로 얼룩

미국 수도 워싱턴에 워터게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빌딩이 있다. 이 빌딩은 1972년 6월 닉슨재선운동위원회 소속 사람들이 이 곳에 입주해 있는 민주당본부를 도청하다가 들킨 것이 불씨가 돼 미국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긴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끈질긴 추적 보도로 전말이 드러난 이 사건은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 했으며, ‘권력과 관련된 조직적인 부정 부패 사건’이라는 뜻의 ‘게이트(Gat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권력층 연루된 비리로 확대 재상산

21세기의 첫 출발선인 올해 우리사회는 30년전 미국 ‘게이트 정국’에 버금가는 비리와 혼란, 분열로 얼룩진한 해였다. 정현준ㆍ진승현ㆍ이용호 등 소위 젊은 벤처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촉발한 ‘3대 게이트’는 국내 정치ㆍ사회ㆍ경제 등 전분야를 뒤흔들어 놓았다.

국정원을 비롯해 검찰, 금감원 등 국가 주요 권력기관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불명예 퇴직했다.

현직 대통령이 선거전 당 총재직을 그만 둔 것도 이들 게이트들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3대 게이트’의 불꽃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지금도 뇌관을 향해 타 들어가는 진행형에 있다는 점이다.

불과 1년여전만 해도 진승현(28), 정현준(33), 이용호(43) 3인방은 촉망 받는 성공한 국내 벤처업계의 간판 주자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기형적인 벤처 열기에 편승, 각종 탈법으로 단숨에 수백억, 수천억원대의 부를 축적함으로써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3인방은 비정상적으로 축적한 부를 이용해 권력층에 접근, 자신의 비리를 감추려고 또 한번의 엄청난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경제 비리가 정치ㆍ권력형 초대형 비리로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2000년 12월 20일 검찰은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ㆍ증재) 및 증권거래법 위반(시세 조종) 등 6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김영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항소심서 무죄) 등 22명이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정치권 로비는 ‘소문만 무성했지 실체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수없이 제기된 의혹과는 달리 단순한 금융 비리라는 결론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 없다. 의혹이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축소ㆍ은폐ㆍ땜질 수사의 결과였다. 국정원 간부들의 개입사실이 먼저 드러났다.

여론에 밀린 검찰의 재수사로 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과 로비스트 박모씨가 구속됐다. 전 국정원 2차장 김은성씨는 사표를 제출하고 앞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을 처지다. 나아가 대검 중수부장과 청와대 민정수석 등 이 정권들어 사정의 사령탑이던 신광옥 법무 차관의 연루의혹으로 번졌다. 혐의를 강력 부인하던 신 차관도 사표를 제출한뒤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현재 야권과 언론에서는 ‘지난해 검찰의 수사 당시 권력층에 대한 로비 여부를 확인 했음에도 고의로 덮고 넘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진승현 게이트는 앞으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눈덩이처럼 커질 산이 많아 정치권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진 게이트와 관련 이런 저런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에 대한수사 역시 베일에 싸여 있다. 정씨 사건은 진승현 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 종결이 있기 한달여 전인 지난해 11월 14일에 종결된 사안이다.

이 사건은 로비 핵심으로 지목된 장래찬 금감원 전국장이 수사단계에서 자살하고, 여권의 실세 개입설이 나도는 등 각종 메가톤급 사건이 잇달아 터져나와 당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부도덕한 벤처기업가와 사채업자가 주도한 대출 사기극으로 결론을 맺었다.


축소·은폐의혹, 국정원·검찰 만신창이

수사를 맡았던 검찰은 정현준씨와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 등 주로 정씨 주변의 사람들 12명만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했다.

당시 정가에서는 ‘현 집권층의 실세인 KㆍKㆍK가 정씨펀드에 가입돼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는 등 의혹이 증폭됐지만 수사 결과는 의외로 단순했다. 소문으로 나돌았던 정치권에 대한 로비 의혹은 이경자씨가 돈을 끌어내기 위해 한 허풍 정도로 결말 지었다. 자살한 장래찬씨가 혼자 챙겼다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로비를한 사람은 있어도 로비를 받은 사람은 없는 형국이 돼 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올해 9월초 터진 G&G 회장인 이용호씨 사건은 ‘게이트 정국’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대검 중수부가 이씨를 구속한 죄명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횡령)과 증권거래법 위반(내부자 거래) 혐의.

당시 그는 부동산으로 돈을 번 뒤 KEP전자, 인터피온 ㈜삼애인더스 ㈜레이디 ㈜조흥캐피탈 ㈜스마텔 ㈜조선화학비료 ㈜쌍용화재보험 등을 잇달아 인수, IMF 체제의 마지막 금융 스타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이씨가 지난해 긴급체포 된 뒤 하루 만에 풀려나는 등 그간 39번이 입건되고도 한번도 구속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파장이 커졌다.

여기에 로비 창구를 한 조폭 출신 여운환씨가 20억원의 로비자금을 살포한 혐의가 드러나고 신승남 검찰총장의 친동생이 이씨로부터 6,000여만원을 받은 사실이 포착되면서 ‘이용호 게이트’로 확산됐다.

검찰 사상 최초로 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감찰본부라는 것이 만들어져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으나 의혹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제 도입이 의결돼 검찰 사상 제3호 특검 팀(차정일 특별검사)에 넘겨졌다.

특검팀은 여운환,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 진정에 대한 검찰의 비호 여부, 보물선 인양과 관련된 대통령 친인척 등 여권 실세와 국정원의 지원 의혹등에 대해 수사할 예정이어서 검찰이 수사중인 진승현 게이트와 함깨 정가의 핵폭탄으로 남아 있다.

이들 3대 게이트로 국가 안보와법치 질서를 수호해야 할 핵심 기관인 국정원과 검찰이 만신창이가 되고, 지역간 계층간의 국론 분열이 극심해 지는 등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19 17:51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