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01년] '조폭'으로 통했다

암흑가에서 양지로, 권력과의 유착설 등 구설수

‘내가 니 시다바리가’(영화 ‘친구’중에서)

올 한해 우리 사회 전반을 가장잘 설명해 줄 수 있는 키워드의 하나로 ‘조폭’을 빼놓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의 준말인 조폭은 어느 시절,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해 온 사회악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조폭이 사회 전분야에 걸쳐 폭 넓고 깊숙이 영향을 미친 적은 별로 없었다.


이권사업에 깊숙이 개입

‘조폭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폭이 우리 가까이에 다가서게 된 이유는 우선 조폭 자체내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까지만 해도 ‘조폭’하면 주로 유흥가나 마약, 도박, 경마, 경매 등 사회 뒷골목의 암흑가 집단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폭은 당당히 양지로 걸어 나오고 있다. 조폭들은 법인을 설립하거나 협회를 결성하는 식의 보다 공개적이면서 거대 규모로 이권을 챙긴다. 벤처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해 비상장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던 사채업자들과 일부 벤처캐피탈사 중 적지 않은 곳이 조폭과 연계돼 있다.

또 지방에서 한창 사기 행각을 벌였던 사설 파이낸스 업계들도 상당수 어깨들이 간여해 있었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폭들은 대형 건설 공사 수주 같은 이권 사업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정권 실세가 뒤에서 밀어준다’는 식의 호가호위나 공갈 협박으로 지자체의 공사 입찰을 독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 때 건설업계에서는 ‘특정지역 출신 조직과 연줄을 대지 못하면 정부 공사 수주는 아예 딸생각을 버려라’ 라는말이 나돌기도 했다.

조폭의 활동 영역이 금융이나 건설업같은 대규모 이권 사업 쪽으로 선회하면서 정치권과의 유착설도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올해 하반기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은 진승현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진씨 구명 로비의 실무를 맡았던 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이 “김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보이던 1997년부터 김홍일 의원에게 건달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는가 하면, “김홍일 의원이 1998년 제주 휴가시 일부 조폭이 동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정가에서는 ‘권(權)-권(拳) 유착’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일부 조폭 두목들은 아예 정치권의 후원자를 자체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검ㆍ경의 간부들과도 친분이 비리사슬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툭하면 있었던 조직폭력배 특별단속이 ‘눈가리고 아웅’ 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야권은 정부가 주류 구매 전용카드제도입을 이후 보완책으로 룸살롱 등 유흥주점의 특소세를 내리려 하자 ‘정부가 조폭을 봐주려는 발상’이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조폭영화 대박, 문화코드로 등장

이런 사회 전반의 조폭 신드롬은 영화와 TV 드라마, 뮤직 비디오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직폭력배의 우정과 배반을 다룬 영화 ‘친구’를 필두로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신라의 달밤’, ‘파이란’,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등의 조폭 소재 영화가 잇달아 개봉돼 국내 영화계를사로 잡았다.

이들 조폭 소재 영화는 나오는 작품 마다 흥행에 성공, 동원 유료 관객만 무려 2,000만명을 넘었다. 여기에 하반기에는 방송사들도 경쟁적으로 조폭을 소재로 한 안방 드라마를 선보여 그야말로 올 한해는 조폭에 둘러싸여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19 17:55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