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도전, 노림수는 뭔가?

한나라당 대선구도에 최대 변수로 등장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가 당내부동의 대권 후보인 이회창 총재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박 부총재는 12월11일 자신의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선출마를 공식선언 했다.

“갈등과 분열 정쟁의 역사를 접고 화해와 화합의 역사를 여는 첫 걸음을 내딛고자 한다”면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돼 국민과 당원의 뜻을 모아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주류측 ‘긴장’ ‘환영’ 두가지 반응

박 부총재의 경선출마 선언은 당내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은 찻잔속의 태풍이 아니겠느냐”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며 큰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까지, 당내의 반응은 다양했다.

박 부총재의 경선 참여선언으로 그간 그의 주변을 감싸며 당내에 떠돌던 한나라당 탈당설과 제3신당 후보설 등은 일단 수면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그러나 사실상 ‘제왕적 총재’로까지 불렸던 이 총재의 아성에 맞선 공식적인 도전자가 생긴 셈이다. 이 총재의 편에 서있는 주류측에서는 ‘긴장’과 ‘환영’의 이중적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에 맞서 박부총재는 여러 의미가 함축된 대응책으로 분위기를 달군다.

경선출마 이후 나타난 ‘박근혜 왕따’ 징후= 박 부총재가 경선출마를 한 직후 당내에선 박 부총재에 대한 노골적인 왕따 현상이 벌어졌다.

12일 당내에서 열린 여성당직자 회의. 1,000여명이 모인 대규모 행사였다. 행사 도중 갑자기 한 여성 당원이 뛰어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박정희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에게 표를 찍어주지 마라”고 외쳤다. 순간 회의장은 크게 술렁였고 회의는 중단됐다.

박 부총재측에서 “의도적인 것이 아니냐”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이 뿐이 아니다. 한 대구출신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전화해 “박근혜를 도와주면 안된다”고 노골적으로 전화를 해 물의를 일으켰고, 모 부총재는 당의 공식 회의석상에서 한 여성 의원을 보고 “당신도 한 번 출마해 보지 그래”라며 은근히 박 부총재를 비아냥 거렸다. 이런 일들은 곧 바로 박 부총재측에게도 기별이 갔고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박 부총재측에서는 “(불공정 사례를)하나 하나 기록을 하고 있다”고 별렀다.

결국 박 부총재는 14일 ‘폭발’했다. “경선출마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주류측을 향해 포문을 연 것이다.

그는 “당내에서 나의 경선 출마에 대해 당을 흔든다는 비난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경선출마에 대한 비난은 결국 (이 총재를) 합의 추대하겠다는것이 아니냐”고 공격했다.

“그는 특히 당에서 나의 출마를 해당행위로 간주,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하지 않겠다면 이는 민주정당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주류측의 반격= 그러나 이번에는 주류측이 발끈했다. “박 부총재측이 산발적으로 일어난 몇 가지 해프닝을 의도적으로 사건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

한 당직자는 “그렇지만 당지도부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식으로 박 부총재측에 시비를 제공할 까닭이 있느냐”고 말했다. 박 부총재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은 “지역정서에서 비롯된 돌출행동”이라는 것이다.

한 주류측의 인사는 박 부총재의 행위에 대해 이런 반론을 폈다. “이총재가 13일 울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박 부총재의 경선출마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또 이 총재는 ‘일부에서 박 부총재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얘기가 있는 데 있을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박 부총재는 이런 해프닝성 사건을 마치 이 총재와 우리가 의도한 것처럼 과장되게 몰아붙이고 있다. 이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다.”


미묘한 줄다리기 계속

- 박 부총재와 주류측의 본심은= 주류측에선 시간이 흐르면서 박 부총재에 대한 입장정리를 끝낸 듯한 느낌이다. 한 주류측 중진의원은 “박근혜 부총재는 우리 당의 보배”라고 까지 말했다.

그는 “만약 그가 경선출마를 선언하지 않고 이 총재 단독으로 추대되는 상황을 상상해봐라. 그것만으로도 대외적으로 엄청난 마이너스가 되고 심할 경우 결정적 타격이 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주류측에선 박 부총재가 ‘다루기 쉽지는 않지만 자신들을 이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정리하고 있다는 징후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한관계자는 “박 부총재가 출마하면 자유경선 분위기와 당내 민주화의 의지를 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다”면서 “어느정도 선에선 박 부총재측을 키워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류측에선 박 부총재를 견제하기 위해다른 비주류 후보들의 출마도 환영하는 ‘다자(多者)구도’로 경선판을 짤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러나 박 부총재측은 나름대로 주류측의 대응을 예상, 사전에 견고한 전략을 수립해 놓은 듯하다. 박 부총재는 경선출마 선언 당시의 발언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는 당시“공정한 경선에서 승산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공정한 룰에서 경선을 하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공정한 경선에서 지면 당연히 승복한다” 고 경선의 공정성을 유달리 강조했다. 그리고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냉정하게 보면 박 부총재는 자신에 대한 당내의 ‘이지메’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측면도 엿보인다. 마치 스캔들을 만들어 대중의 시선을 잡아 끌도록 하는 ‘스타 시스템’을 본뜬 듯 박 부총재는 자신에 대한 반감을 역으로‘홍보’에 이용하는 셈이다.

또 ‘불공정경선’에 걸어 주류를 반격할 명분도 착착 쌓아가는 망외의 소득도 올리고 있다.


대권ㆍ2인자ㆍ탈당 등 시나리오도

정가에선 박 부총재의 경선출마의 노림수를 3가지 정도로 보고 있다.

우선 대중적 인기를 토대로 이 총재와 진검승부를 겨루며 대권을 노리는 경우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내의 분위기상이 총재를 경선에서 이기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 탓에 포스트 이회창을 노린 2인자 경쟁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직은 위험한 발상이지만 장기적으로 탈당까지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총재와 겨루다 대세 전환이 불가능해 질 경우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탈당, 제3의 세력과 연대한다는 시나리오이다. 물론 박 부총재측에선 펄쩍 뛰며 부인한다.

박 부총재의 파괴력이 어떻든 당내에선 이미 상당한 회오리가 일고 있다. 그리고 박 부총재는 ‘1인보스체제 타파’를무기로 이 총재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당권-대권 분리론, 전당대회 시기 문제 등 주류측과 실랑이를 벌여야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대기중이다. 박 부총재는 대선정국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주류측과의 전선도 넓어질 전망이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12/19 18:49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