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워싱턴의 김치 향기

요사이는 보기 힘든 정경이지만 늦가을에서 초겨울이 되어 은행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어머님이 동네 아줌마들과 모여 김장을 담는 것이 연례 행사였다. 그리 많지 않은 식구였지만 한 겨울밥상에 빠질 수 없는 만능 반찬이기에 100포기 가까이 되는 배추를 집 앞마당에 쌓아 놓으면 어린아이들에게는 자기 키보다 훨씬 큰 것이 정말 산더미 같았었다.

그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배추들이 며칠 지나면서 줄어들다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면 온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앉아 절인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한번씩 얻어먹는 야들야들한 배추 속은 그 위에 얹은 빨간 양념과 어울려 어린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었다. 그 맛에 반해 하루 종일 들락거리면서 배추 속을 얻어 먹다보면, 결국에는 그날 저녁에는 배가 아파 화장실 출입을 자주 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요사이는 워낙 사람들이 바쁘게 살다보니 김장은 커녕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 가정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국식품점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로 만족하면서 지내오다가, 최근에는 아이들 키우는 부담에서 조금 벗어난 아내가 직접 배추를 사다가 절이고 무채를 썰어 김치를 담가 집에서 먹고 주변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곤 한다.

어쨌든 김치는 철을 막론하고 우리 식탁에서는 빠질 수 없는 반찬이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한국 음식의 대명사인 김치 축제가 워싱턴 D.C.에서 열렸다.

주한 미 대사관 문화홍보원에서 주최하고 한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 단체인 ‘Korea Club’ 과 ‘Friends of Korea Peace Corps’ 회원 및 외교 사절들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끝마쳤다.

‘한국의 맛- 김치’라는 행사의 타이틀이 말해 주듯이, 한국 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김치와 불고기이다. 실제로 Korea Club이 처음 발족할 당시 모임의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의논되었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중의 하나가 바로 ‘Kimchi Club’이었다.

그만큼 한국과 동일시되는 김치가 국제 사회에서는 일본의 기무치에 밀려 원조 자리를 빼앗길 뻔하다가 국제 식품규격협회에서 정식으로 한국의 김치가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우리 나라의 김치를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그 효능과 장점을 입증하여 세계적으로 보급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 중의 한 분이 바로 세계 최초로 김치 박사학위를 받은 김만조 여사이다. 칠순을 넘기신 김 박사는 직접 슬라이드 보여주면서 김치의 기원과 종류, 제조 방법 등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셨고, 나중에는 다른 몇몇 분들이 나와 직접 김치를 담그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강연과 시범이 끝난 후에는 구절판이나 전과 같은 전통 한국음식으로 된 뷔페가 있었다. 물론 김치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300여 종류의 김치를 다 선보일 수는 없었지만, 김치는 모두 빨갛고 매운 배추 절임이라고만 생각해온 미국인들에게는 하얀 나박김치나 동치미는 새로운 발견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배추김치도 음식점에서 담근 김치와 행사의 스폰서인 제일제당에서 판매하고 있는 김치가 함께 선보여 참석자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특히 제일제당에서 김치를 소재로 개발한 샐러드는 미국 시장에서도 상당히 호응을 얻고 있어 조만간 김치가 피클처럼 미국인의 식탁에 오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아울러 2003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치박물관이 워싱턴 D.C. 근교에 세워지면 우리 김치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홍보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이다.

행사 내내 대사관저에는 젓갈 냄새 섞인 독특한 김치 향이 은은히 배어있었다. 60년대 후반 충남 천안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일했다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미국인 할머니는 미국 사람들이 이 김치냄새를 곧 치즈냄새처럼 느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치를 통해 한국의 문화가 미국 문화의 한 요소로 기여해 주기를 바란다면서 행사장을 떠났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IH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12/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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