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애니메이션] 절묘하게 발가벗긴 性, 性愛 그리고 사회 비틀기

■ 고인돌 王國
(박수동 지음/우석출판사 펴냄)

요즘 ‘성인 만화’라고 하면 눈 뜨고 보기 민망한 에로물이나 잔인한 장면이 들어간 폭력 만화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성애나 폭력물에 엄격한 제한을 했던 1970년대만 해도 성인 만화는 지금 중ㆍ고생들이 봐도 싱겁다고 할 정도로 소재가 단순했다. 여자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려고 경찰이 무릎 위 치마 길이를 자로 쟀던 때였던 만큼 인쇄 매체에 감시는 더욱 더 엄격했다.

그래서 당시 성인 만화는 통속인 내용을 다룬 일반 만화와 음지에서 유통되던 음화로 양분 됐다.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소개된 성인 만화는 주로 사회ㆍ정치 상황을 풍자하거나 일상 생활을 평면적으로 다룬 게 전부였다.

반면 비공식적으로 유통됐던 음화는 농도 짙은 퇴폐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성적 분출의 출구를 막아 놓은 상태에서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더 자극적이고 노골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양극화된 성인만화 시장에서 주목 받았던 작가가 바로 박수동(61)이다. 박수동의 대표작인 ‘고인돌’은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박씨는 성인들의 억눌린 성적 탈출구를 간접적으로 나마 보여주기 위해 ‘누구나 가식 없이 발가 벗고 사는 원시적인 상태’인 고인돌을 착안해 냈다.

원시 시대를 시대 배경으로 했다는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최소한의 것만 가린 상태에서 꾸밈 없이 살아가는 원시인들의 생활을 통해 박수동은 성적 표현에서 동시대의 누구보다 자유로워 졌다.

특히 그는 등장 인물들을 모두 투박하면서도 어눌한 모습으로 묘사, 혹시 있을지도 모를 선정성 문제를 사전에 차단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외의 주변배경은 극도로 절제하는 응축 기법을 활용,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실하게 담는 테크닉을 발휘했다.

‘고인돌 왕국’은 1974년부터 모 잡지에 17년간 830여회 실린 것을 한 데 모아컬러로 재출간한 것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은 없지만 올드 팬들에겐 옛 향수와 상큼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26 18:49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