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89)] 지신(地震)②

훌륭한 인물이 죽으면 그를 신으로 섬기는 신도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꼽히는 인물이 스가 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이다.

대대로 학문에 전념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우(右)대신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당시 일본을 주물렀던 호족 후지와라(藤原)가문의 모함으로 규슈(九州)에 유배돼 한을 품고 죽었다.

한을 안고 죽은 사람의 원혼은 해코지를 한다는 '온료(怨靈) 신앙'에 젖은 당시 사람들은 교토(京都) 궁전의 천황 거처인 '세이료덴'(淸凉殿)에 벼락이 떨어지자 그의 복수라고 믿었다. 이 때부터 그는 학문의 신이자 벼락의 신으로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한편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지진, 벼락, 화재, 아버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꼽아 왔다. 두 번째 공포의 대상인 벼락의 신 스가가 26세때 치른 과거 시험은 공교롭게도 첫째 공포인 지진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답안에는 이런 기술이 남아 있다. '옛날 얘기에도 나오듯 물위에 떠 있는 지형에 지맥이 이어져 있다. 물위에 떠 있으므로 물결에 따라 도무지 안정되지 못해 동쪽이 솟으면 서쪽이 가라앉고, 남쪽이 흔들려 북쪽이 가라앉는 윤전(輪轉)이 거듭돼 … 널리 용출과 진동, 동요를 거듭한다.'

지구가 사과라면 사과 껍질 정도인 지각이 맨틀 위에 떠 있고, 맨틀의 대류에 따른 압력이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는 대륙이동설을 연상시킨다.

물론 스가의 독자적 발상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해 오던 얘기를 옮긴 것이니 당시의 우리 지식층도 널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진에 대한 역사 기록도 우리가 일본보다 앞서 있었다. 416년 8월23일 현재의 오사카(大阪) 지역인 가와치(河內)지방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니혼쇼키'(日本書紀)의 간단한 기술이 일본 역사상 최초의 지진 기록이다. 삼국사기에 서기 16년의 지진이 기록된 데비하면 꼬박 400년이 늦다.

다만 과거 시험에 지진이 출제될 정도로 현실적 관심이 컸던 만큼 이후 일본의 지진 기록은 우리에 비해 지역과 피해 정도에 대한 기술이 한결 상세해 진다.

이는 나중에 일본 역사지진학의 발달과 결합, 과거 지진의 보다 뚜렷한 모습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다. 학계 전문가들의 축적된 노력의 차이는 양국의 관심의 차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지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차이를 낳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대개 그 지역의 과거의 지진 경력이 함께 보도된다. 서구 문명이 도입된 19세기 이후의 경력은 그렇더라도 아득한 옛날의 지진에 대한 규모 추정치는 도대체 믿기가 어렵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일본의 근대적 지진연구는 1891년 기후(岐阜)현과 아이치(愛知)현 접경지역에서 일어나 7,300명의 목숨을 앗아 간 '노오비'(濃尾) 지진이 직접적 계기였다.

이듬해 문부성이 설치한 지진예방조사회는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이후 도쿄(東京)대학에 설립된 지진연구소에 업무를 넘기기까지 과거 지진 조사에 매달렸다. 그 결과는 1904년에 '대일본지진사료'로 나타났고 1941년 '증정 대일본지진사료'로 다듬어져 한눈에 과거의 지진을 살필 수 있게 됐다.

도쿄대학 지진연구소의 가와스미 히로시(河角廣;1904~1972) 교수는 이를 기초로 과거 지진의 규모를 추정한 '가와스미 리스트'를 만들었다. 부분적인 수정에도 불구하고 이 목록은 지금도 일본의 과거 지진에 대한 기본 자료로 인용된다.

그는 지진 규모 추정에 일본 전국에 흩어진 묘비를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개 직육면체인 묘비는 무게가 무거울수록, 기단과 접한 바닥 폭과 높이의 비율이 낮을수록 묘비는 쓰러지기 어렵다.

묘비의 무게, 쓰러진 방향으로의 바닥폭과 높이의 비율을 알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하면 묘비가 쓰러질 지를 계산할 수 있다. 같은 묘지에서 지진에 의해 쓰러진 묘비와 쓰러지지 않은 묘비를 조사하면 지진동의 최대 가속도를 추정할 수 있다.

일본 혼슈(本州)는 태평양플레이트와 유라시아플레이트, 필리핀해 플레이트의 경계면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유라시아플레이트 안쪽에 자리잡은 우리와 달리 대규모 지진의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70~90년을 주기로 거대 지진에 시달려 왔다. 그런 경험이 지진 연구와그에 따른 다양한 대응책을 재촉했다.

그 결과 어지간한 지진에 땅은 흔들려도 그 위에 인간이 설치한 구조물은 무너지기 어렵다.

고베(神戶)를 휩쓴 대지진은 플레이트 경계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내부의 활성단층이 움직이면서 일어났다. 과거의 지진이 지각에 남긴 상처인 활성단층은 한반도에도 많이 남아 있다.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일본의 불행이라면 지나치게 지진에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불행일 수도 있다. (끝)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12/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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