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삶, 아름다운 인생] 유권자 혁명은 계속된다

참여연대 박원순 변호사, 공약·정책 감시로 '제2낙선운동' 전개

새해는 선거의 해다. 월드컵대회 기간인 6월에는 지자체 선거가 있을 예정이고, 12월에는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지자체 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점 때문에, 대선은 여야가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어 벌써부터 선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2000년 4ㆍ13총선은 여소야대라는 정치 구도를 양산했다.

하지만 4ㆍ13총선은 이런 선거 결과보다 시민운동단체가 사상 초유로 벌인 낙선ㆍ낙천 운동이라는 신개념의 시민운동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다. 800여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총선연대가 낙선 후보로 지목한 후보자중 68.6%가 고배를 마셨다.

수도권에서의 낙선률은 무려 95%에 달했다. 총선 연대의 이 같은 놀라운 성과에 힘입어 이후 시민운동단체의 역할과 비중은 몰라보게 커져 가고 있다.


낙천ㆍ낙선운동은 유권자 힘의 표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인 박원순(47)변호사는 총선연대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총선연대의 활동을 ‘국민의 정치 변화에 대한 갈망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킨 유권자 혁명’이라고 말한다. 부패하고 썩은 정치인들을 방관자로 남아 있던 유권자들이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모든 역사적 사실이 그렇듯 총선 연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있을수 있습니다. 이 운동이 부정ㆍ부패한 정치인들 중 상당수를 낙천ㆍ낙선 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국회가 예전보다 더 나아진 게 없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운동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했던 절망과 비판을 역동화 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갖습니다. 각기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잠재해 있던 국민의 정치 개혁의 갈망을 밖으로 끄집어내 일부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변호사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자체 선거와 대선 등 굵직한 국가 대사를 앞둔 시점에서 시민운동단체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회적 역할과 책무를 수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다른 시민단체를 비롯해 학계 언론계 재야 사람들과 자주 접촉해 의견을 교환한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을 자발적으로 시민운동의 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선거에서 국민들의 진정한 요구를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을까’ 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는 올해 대선은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여야 대권 후보들의 내부 경쟁이 치열한데다, 영호남으로 갈라진 지역감정이 선거전을 통해 또다시 불거질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번 양대 선거에서 시민운동단체의 선거 감시 역할은 더욱 커지고 막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시민운동단체가 4ㆍ13총선때처럼 낙천ㆍ낙선 운동을 벌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총선은 후보자가 많아 그 중에서 부도덕하고 부패한 후보를 가려내 의견을 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있었지만 대선은 그것이 어렵습니다.

자칫 특정 후보에 대한 낙천ㆍ낙선 운동을 한다면 분명히 ‘시민단체가 특정 정권의 편을 든다’는 혹독한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그럴 경우 정치적 중립도 지키기가 힘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위험 부담을 가지면서까지 무리하게 낙선 운동을 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정선거를 감시하고 국민들이 올바른 지도자를 뽑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다른 여러 방안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선거비용 투명성 감시에 주력할 것

박 변호사는 이를 위해 몇 가지 생각하고 있는 공정선거 감시 방안을 소개했다.

우선 후보자들의 정책 감시다. 대선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이 올바른 것인지 분석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무리한 공약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과도한 공약으로 인해 차후 국정에 무리가 안 가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다음은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와 관련된 정보 자료를 제공해 공정한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후보자에 대한 과거 이력이나 업적에 대한 공정한 조사 자료를 유권자에게 제공,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선거 비용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것이다. 지출된 선거비용의 문제점을 들춰내는 ‘사후 조사’ 방식이 아니라 선거전에 유입되는 각종 정치 후원금의 내역 공개 요구 등을 통해 선거 자금의 도입에서 유용까지 모든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추적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누구든 선거 비용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선 자금의 투명성을 감시한다는 것은 공정 선거에 가장 핵심적인 사안입니다. 우리나라는 선거 비용으로 얼마를 썼느냐가 주로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호주처럼 선거 자금 유입 단계에서부터 모든 자료를 공개토록 하면 아마 선거 자금으로 인한 잡음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현행 우리 선거법은 모든 대통령과 후보자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현실성이 없는 선거 비용을 설정해 놓고 서로 묵인해가며 이를 어기고 있으니 그게 다 범법 행위가 아니고 뭡니까? 현재 선거 비용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에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총선 연대의 낙선 운동이 불법으로 판결난 데 대해서는 매우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의사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들이 스스로 나서 ‘이런 부도덕한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면 안된다’고 평화적으로 호소한 것이 어떻게 위법 행위가 되느냐는 것이다.


“낙선운동 ‘불법’ 인정 못해”

“대법원에 상고할 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이 판결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벌금은 내지 않을 것입니다. 기꺼이 4~5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살다나올 생각입니다.

무슨 게이트나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 의원들이 연루됐다고 나오지만 감옥에 가는 의원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의판결이 그렇다면 떳떳하게 감옥에 갈 것입니다. 그것으로 판결의 부당함과 우리의 정당성을 알릴 것입니다.

결코 시민단체들이 헌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것은 아닙니다. 시민운동가들은 미래에 보다 올바른 법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대선에 앞서 벌어지는 지자체 선거에서는 각 지방의 시민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자기 지역의 선거 감시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 서울시의 경우에는 몇몇 주요 시민단체가나서 정책감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선거를 대비해 총선연대 같은 기구를 따로 만들진 않을 것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대회의나 공선협을 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덧붙였다.

“총선연대 이후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부 음해 세력들이 시민단체를‘정권의 홍위병’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싸잡아 비난하는데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수천 수만개의 시민단체 중에는 일부 그런 곳도 없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단체를 매도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시민단체는 아직도 국민의 눈과 발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주십시요.”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12/28 11:11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