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야학] 시름 접고 어께에 희망을 얹는다

남부야학 송년잔치…온기 가득한 달동네의 밤

“감기 조심하고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바란다. 2001년 12월 22일 할머니가.” 글을 갓 깨우친 할머니가 군대 간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처럼 또박또박 낭송한다.

한글반 할머니 학생 9명이 ‘아리랑’ 합창과 함께 펼쳐 보이는 춤사위에 수십년 달동네 생활의 시름은 오간데 없다.


60여명의 남부인, 희망의 어깻짓

이날 오후 8시, 5만원에 빌린 인근 헬스클럽에서 벌어진 ‘남부인의 밤’. ‘민중을 위한 세상-남부 야학’이라는 부제가 딸린 2시간의 특별한 송년회였다. 폭탄주도, 그 흔한 가라오케도 없었지만, 60여명의 남부인들은 열창과 정겨운 어깻짓으로 1년을 전송했다.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학생들의 무대 ‘봉숭아 학당’은 그야말로 폭소 마당. 수다맨과 연변처자가 주고 받는 열띤 너스레에 개그 프로가 머쓱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 자리가 있기까지, 어떤 기막힌 세월이있었던가를 이들 모두 안다.

남부야학 교가 ‘새벽을 여는 노래’와‘바위처럼’을 합창할 때, 낮지만 힘찬 목소리에는 염원이 짙게배어 있다.

“우리 모두 절망에 굽히지 말고/시련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며…”. 특히 난곡지역 주민들의 후미진 삶을 기록한 자체 제작 영상물이 투사될 때, 사람들은 숨이 멎은 듯 화면속 낯익은 빈곤의 풍경을 응시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철거 대상으로 내몰린 우리들에게는 생존권과 주거권, 무엇보다 동료애가 있습니다.” 이정선의 가요 ‘외로운 사람들’과 구전가요 ‘타박네야’가 배경 음악으로 펼쳐 지면서, 화면에서는 야학 졸업생의 말이 흘러 나온다.

“야학은 나 자신을 찾아 갈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불이 켜지자 터져 나온 박수에는 뜨거운 물기가 배어 있었다.

숙연한 분위기는 이어지는 2인1조 해방춤으로 화들짝 달아 났다. 아이들의 깔깔댐, 아주머니들의 자지러들 듯한 웃음속에 펼쳐지는 ‘꼬부랑 할머니’ 노래. 이어 중앙대졸업예정자인 천기홍 강학(교사)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 제낀다. 이 풍경앞에, 밴드나 가라오케가 아니면 노래 한 줄 못 부르는 우리 시대 놀이문화가 초라하다.

이날은 강학과 졸업생 등 청춘의 빛나는 순간을 이곳에서 보낸 귀한 손님까지 모처럼한 데 모인 자리이기도 했다.

그들의 모임인 ‘남부네’의 회장 김낙영(35ㆍ경호엔지니어링)씨는 “1992~94년 강학 생활은 실로 보람의 시기였다”며 “당시의 약속과 말에 책임지려는 태도가 어느덧 몸에 베이게 됐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 하기 보다는 진실하지 못함을 두려워 하라’는 이곳의 교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졸업생들도 모처럼 한자리에

졸업생 신선근(35)씨는 엄격한 규율과 학생들간의 강한 유대를 이곳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후원회원이기도 한 신씨는 이날 여자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신씨는 92년 이 학교에 입학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덕에, 지금은 광고회사에 다닌다.

아주머니 학생들이 부친 먹음직스런 전과 구운 삼겹살에 막걸리가 오가면서, 남부인들은 내년을 기약했다.

즐거운 소란에는 할머니 학생들이 목청껏 소리지르던 함성이 아직도 갈곳을 못 찾고 있었다. “가난때문에 학교도 못 가. 서러운 내 심정 누가 아나”. “한글 몰라서 맺힌 한은 저 하늘 별도 몰라준다”. 이 지역 사물놀이패 ‘바람몰이’가 흥겨운 사물 공연으로 그 한을 보듬었다.

군침 도는 먹거리에 삼삼오오 둘러 앉는다. 방학이 없는 남부교육센터의 겨우나기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2/28 13:45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