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새해를 맞으며

이맘때쯤 되면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고 새해를 설계한다. 일상적인 생활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신문과 언론에서 간추려 싣는 몇몇 커다란 사건들 외에는 특별히 신나는 것도 없고 서러운 것도 없는 한해를 보내면서 세월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하는 아쉬움이 있게 마련이다.

일년을 지나놓고 보니 두세 달이 멀다하고 물이 새는 배관을 고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다. 지은지 40년이 지난 집인 탓에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지만 그 중에 가장 말썽을 부리는 것이 바로 상수도 배관이었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물을 틀면 콸콸 쏟아져 나올 수 있어야 하니 배관 시스템은 상당한 압력을 견뎌주어야 한다.

그런데 배관재가 나이가 들다 보니 집안에 필요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종종 바늘 눈 만한 구멍을 통해 내부에 쌓인 압력을 방출하곤 한다. 그래서 간신히 작은구멍을 찾아 고쳐 놓으면 석달이 채 못되어 다른 곳에서 구멍이 생겨 속을 썩인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지하실에 놓인 가구나 마루 바닥이 마를 날이 없으며, 배관 수선비용도 만만치 않아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집안 전체의 배관을 완전히 새것으로 갈아버리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뻔한 살림살이에 그만한 투자를 할 형편도 못되고 하여 겨우 생각해 낸 꼼수가 바로 목욕탕의 수도꼭지를 조금만 열어 놓는 것이었다. 똑 똑 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이드는 것은 항상 절전과 절수가 지상최고의 선이라고 교육받아온 80학번대의 한국인으로서는 참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석 달이 멀다하고 지하실이 물바다가 되니 어찌 하겠는가. 다행하게도 그 꼼수 덕분에 아직까지는 물난리를 겪지 않았다.

성탄 전야가 월요일이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휴를 즐기다가, 산타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최근유행했던 한국 영화를 보았다. 두 편 모두가 한국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라 밤늦도록 보아도 지루한 줄 몰랐다.

최근 방화가 관객 동원에 있어서 외국 영화를 크게 앞지른다는 말을 70년대와 80년대에 극장을 드나들었던 필자로서는 실감하지 못하다가, 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두 편의 영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욕설과 폭력이었다. 물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까운 친구간에, 그리고 거나하게 취한 술자리에서 오갈 수 있는 언사들이었다.

그러기에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스크린 속의 주인공들과 격의 없이 일체감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바로 방화의 폭발적인 흥행성공 비결이 아닌가 하는 아마추어적인 분석도 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 생활 주변의 격한 말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흥행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졌다는것에 대해, 워싱턴 촌놈인 필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수도꼭지를 열어놓아야 할 정도까지 내부압력이 높아졌는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온 세계와 전 미국인을 경악시킨 911 테러 사건도 결국 뿌리를 찾아가 보면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못하는 이슬람교 및 이들 국가들의 전체주의적 행태가 한 원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미국의 지식인들은 911 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 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사라진다고 하여도, 빈 라덴의 테이프에 나오는 무명의 부족장들이 (빈 라덴이 테러계획의 전말에 대한 설명을 경외의 눈빛으로 들으면서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계속 남아 있는 한, 이슬람 학교에서 알라의 위대함만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있는 한, 아무리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한다고 하여도 인간 미사일을 막을 수는 없다고 개탄하고 있다. 집에 불이 났는데 배관공만을 불러서야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다.

우리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온갖 사건들이 많았다. 오래된 파이프라서 새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내부 압력이 너무 높아져 터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배관을 다 갈아치울 수 없다면 한 두 군데 수도꼭지를열어 놓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영화 보러 가는 대중은 수도꼭지에서 조금씩 흐르는 물을 지나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디가 문제인지는 알 수있으니까.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IHTE 변호사

입력시간 2002/01/0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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