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식 인사'에 한나라 "움찍"

"조직부터 생각하라" 당 권력지도 새롭게 그려

2001년 12월 24일 한나라당에선 갑작스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1년7개월간 자리를 지키며 총선 등 4차례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김기배 총장을 비롯한 당지도부가 전격적으로 교체됐다.

발단은 김만제 정책위 의장이 최근 혼선을 빚었던 교원정년안 처리 문제,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의원들의 반발 등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

그러나 당3역을 비롯한 중간당직자들도 일괄 사의를 이회창 총재에게 표명했고, 이 총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단행해 버렸다. 이상득 국가혁신위 부위원장이 사무총장에, 이강두 의원이 정책위 의장에 임명돼며 김기배 총장 체제는 막을 내렸다.

당내에선 이번 인선에 대해 “내년 전당대회를 대비한 경선 관리형 체제”라는 평이 많다. 그러나 이번 당직개편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권력지도도 다시 그려질 수 밖에 없게 됐고 이 총재의 인사스타일도 다시 한번조명을 받게됐다.


당내 권력이동, 힘의 변화 감지

한나라당은 과거 정당들과 힘의 배분이 이뤄지는 과정, 즉 권력의 성격이 다소 다르다.

권위주의 정권시절이나 문민정권, 현재의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최대 오너인 총재(혹은 당내 1인자)와의 정치적 인연에 기반했다.

정치적 보스와 정치역정을 함께 해 온 가족과 같은 가신들이 중심에 서서 동심원을 그리며 힘의 배분이 이뤄진 것. 총재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당직에 관계없이 공천등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발언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에게는 아직 주변에 가신은 없다. 의원들간에도 별다른 정서적 연대나 구심점을 찾기는 어렵고, 오로지 이총재가 의원ㆍ당원들간의 관계를 독점해 관리하고 있다.

가령 보수색이 강한 정형근 김용갑 의원 등도 ‘이 총재의 당선 가능성’을 믿고 이 총재와 관계를 맺고 있고, 이부영 부총재 등 비주류들도 이 총재와의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가신이 없는 이 총재의 정치스타일은 곧 ‘공조직 선호’로 나타나고 있다.

즉 주요당직에 임명되는 것은 힘이 생기는 것이고 당직에서 멀어지면 힘도 빠진다. 당직개편은 곧 권력이동인 것이다. 이번 당직개편에서도 이 같은 힘의 변화가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의 권력지도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 총재를 중심으로 한 주류와 비주류로 나눌 경우 비주류는 김덕룡의원계, 이부영부총재계, 그리고 박근혜 의원 정도가 고작이다. 김덕룡ㆍ이부영계 역시 수적으로는 미미한 편이다.

반면 소위 ‘이너서클’도 비주류 만큼이나 미미하다. 당내에선 가신은 아니지만 가신에 준할 정도로 이 총재와 관계가 돈독한 사람들로 양정규 부총재와 하순봉 부총재, 그리고 윤여준의원을 꼽는다.

당내에선 “윤의원은 주요 당직을 맡고 있지 않지만 당직을 주기에는 너무 눈에 띄어 주지 못하는 사이”라고 소문날 정도. 이 총재가 각종 사안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하나의 당내의 주요그룹은 주요당직을 맡거나 거친 부산출신 의원들. 김무성 총재비서실장과 권철현 기획위원장으로 대변된다. 김 실장이 비록 자리를 맡은지 얼마 안돼긴 했지만 이번 인사에서 건재, 총재의 변함없는 신임을 과시했다.

또 권철현 의원은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 이 총재가 발목을 붙들어 대변인에서 기획위원장으로 수평이동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보여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상당히 경쟁적이어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박관용의원 등 민주계 출신들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다음은 보수색을 보이는 영남의원 그룹. 부산그룹과 겹치기도 한다. 최병렬 부총재를 비롯 김용갑 안택수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총재의 가장 두터운 정치적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 총재의 정치적 색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 미묘한 갈등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또 한 그룹은 수도권 등 상대적 개혁그룹 인사들로 이재오 총무와 김문수 사무부총장, 김영춘 이성헌 의원 등 소장 그룹들을들 수 있다.


김무성, 권철현등 신실세들 파워 여전

그러나 이 같은 기존의 한나라당 권력지도에서 점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특히 이번 당직개편을 거치면서 한나라당 내에선 “이회창 총재의 측근 그룹이 점점 명확해지고 힘도 두터워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당직을 맡았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당직을 순환해 맡는데 대한 분석이다.

특히 김무성 권철현 대변인 등이 ‘신실세’로 분류될 만큼 정치적 파워를 보이고 있다.

김기배 전 사무총장도 역시 국가혁신위의 부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건재함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전에 주요 당직을 맡았던 몇몇인사들은 “이제 총재의 관심권 밖에서 벗어난 것 같다”는 평을 듣는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총재가 당직을 맡기는 것은 신임의 표시임과 동시에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라며 “능력을 검증해 본 결과 기대에 못미치면 다시 중용하지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테크노크라트 출신 의원들의 중용도 엿볼수 있다. 이번에 임명된 이상득 사무총장 이나 이강두 정책위의장 등은 테크노크라트 성향이 강한 정치인. 경우는 다소 다르기는 하나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도이 범주에 속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유 소장이 아마 당내에서 이 총재의 가장 잦은 호출을 받는 사람일 것”이라며“이 총재가 유 소장의 주전공인 경제외에 정치현안들에 대해서도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말했다.

한편 내년 대선때 ‘세대교체론’에 대처하기 위해 이 총재의 의도적인 기획이긴 하나당이 젊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남경필 총재실 부실장이 30대에 일약 대변인에 발탁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 김무성 권철현 김문수(사무부총장) 남경필 등 비교적 젊은 의원들이 당의 전면에 나서면서 당의 이미지를 젊게 바꾸고 있는 것. 내년 대선때까지 이같은 기류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 같은 구도탓에 당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는 당내 TK 인사들 사이에선 “부산과 수도권ㆍ테크노크라트그룹에 밀려 이러다가 대선후에 ‘토사구팽’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경계의 소리도 조금씩 나온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3 11:31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