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 의혹으로 키운 '게이트 코리아'

2001년 9월2일 오후. 평온하던 대검찰청 기자실에 중수부의 엠바고(시한부 보도자제) 요청이 들어왔다.

공적자금 비리수사의 일환으로 이용호라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CRC) 대표를 수사하고 있으니 어느정도 ‘익을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중수부가 기업비리나 파고 있었단 말야” “큰 기사도 아닌데 엠바고 받아주지 뭐” 대어가 미끄러지는 수면은 고요하다고 했다. 올 한해 정ㆍ관계를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4대 게이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틀 뒤 이용호씨가 계열사자금 등 6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수감됐지만 모든 언론은 한 부도덕한 기업인의 과욕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파장만을 걱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이씨가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검찰과 언론의 불안한 동거는 일주일밖에 가지 못했다. 한국일보가 11일자로 이씨가 2000년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다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보도한 이후 사건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13일 조직폭력배 출신인 여운환씨가 이씨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긴급체포되면서 두 사람과 친분관계가 있다는 정ㆍ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쏟아져나왔다.

이씨 변호인이던 김태정 전 법무장관과 수사지휘부였던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 등 검찰간부들이 이씨의 비호세력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동생관리를 문제삼아 신 총장마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검찰을 못 믿겠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라는 초유의 기구를 구성, 진화에 나섰고신 총장은 탄핵위기에 몰리는 수모를 겪었다. 어느새 이씨 사건은 권력형 비리사건을 뜻하는 이용호 게이트로 바꿔져 있었다.

이 게이트의 불똥은 12월 하순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2000년 11월 정ㆍ관계 로비의혹을 낳았다 미완의 수사로 끝난 ‘정현준 게이트’로 옮아붙었다.

별개로 보이던 두 게이트는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이 이씨의 보물선 인양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지난해 정씨가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로부터 금감원 검사무마 대가로 5,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연결되면서 한배를 타게됐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정 게이트의 수사팀도 특수2부여서 사건은 검찰과 국정원의 조직적 은폐의혹으로 번져갔다.

두 사정기관의 은폐의혹은 2000년 12월 ‘진승현게이트’와 관련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의 진씨 로비스트 폭행사건이 11월 13일 한국일보에 의해 폭로됨으로써 정점에 다달았다.

이후 진씨가 정성홍 국정원 경제과장과 민주당 의원에게 로비를 벌였던 것을 지난해 수사팀이 간과한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은 15일 최후의 수단으로 전격 재수사를 결정했다.

수사과정에서 김 차장을 정점으로 하는 국정원 경제단이 벤처기업을 관리하며 이들로부터 부정한돈을 받았고, 수지김 살인사건의 주범인 윤태식씨마저 국정원의 은폐와 후원속에 사업을 벌여온 사실이 밝혀졌다. 윤씨와 관련해서는 정ㆍ관계 인사들에게 주식로비 등을 벌인 의혹이 추가돼 4대 게이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진실은 밝혀진다는 진리를 애써 외면한채 관행 또는 특수관계에 의해 사건을 왜곡해온 수사기관의 일탈이 가져온 결과는 국민들에게 심한 배신감과 불신만 키워주었다.

손석민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3 13:55


손석민 사회부 herme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