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괴선박 궤적을 쫓고 있었다

가공할 감청능력 입증, 북일·북미관계 급랭 예고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12월22일 동중국해에서 침몰한 괴선박은 북한군 소속 특수작전 선박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괴선박 침몰 이틀 전에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추적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괴선박 침몰사건으로 북한과 일본 관계는 물론 북한과 미국 관계까지 경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국, 교신내용 일본에 통보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12월 27일 침몰한 괴선박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은 북한 특수부대원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문제의 괴선박이 북한의 대남 공작기지인 서해안 해주에서 18일 출항한 뒤 북상해 남포항근처 송림에서 제8특수군단 소속 대원들을 태우고 동중국해로 다시 출항한 것을 미국 정찰위성이 포착해 일본에 알렸다고 전했다.

제8특수군단은 흔히 ‘제8군’으로 불리는 파괴공작 전문의 정예 특수부대로 병력은 10만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

제8군 병력은 특수 임무를 맡기 때문에 북한의 최고의사 결정기관인 국방위원회의 직접 지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이신문은 덧붙였다.

미국은 괴선박이 해주에서 출항하자 정찰위성으로 추적하는 동시에 오키나와(沖繩)기지의 전자정찰기 EP3E를 동원해 수색활동을 벌인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방위청도 대잠수함 초계기 P-3C를 투입해 괴선박의 위치 추적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신문은 또 괴선박이 해상에서 북한 노동당의 주파수로 북한과 교신했으며 교신상대는 북한군이었다며 괴선박의 운항목적은 유조선 등 항해가 빈번한 동죽국해의 해상 교통상황과주변국의 방위체계 정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도쿄(東京)신문은 일본 방위청이 19일 포착한 괴선박과 북한간의 교신 내용은 파괴 공작에 관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이 강한 우파 성향의 매체로 북한을 비판하는 기사를 자주 게재하기는 하지만 일본 언론의 보도 관행상 이런 내용은 제법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괴선박을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면서 북일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원색적인 성명전이 벌어지는 등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일본정부가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괴선박을 북한과 관련지으려고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중대한 모략 행위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평양방송은 이에 앞서 26일 이번 괴선박사건을 처음 보도하면서 “일본의 북한 적대 정책이 빚어낸 엄중한 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27일 “일본의 행동은 국제법과 관계 법령을 토대로 한 조치였다”며 “북한의 저질스러운 비판은 타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26일 여객선협회에 “일본 선박을 상대로 한테러나 나포 등의 위협이 증대될 우려가 있다”는 협조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대북, 식량지원 취소 가능성 높아

일본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일본 경찰의 조총련 중앙본부수색과 부간의 일본인 행방불명자 조사 중단 등으로 북ㆍ일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나온 북한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양국간 관계개선 전망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내년도 대북 식량지원 계획을 취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있다.

이 같은 성명 수위에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실제 일본은 이번 사건 처리를 외무성 경찰청 방위청이 아닌 총리 관저가 주도하고, 주요 관련 사항을 관저 수뇌부가 언급하는 등 최고위 수준의 대응을 펴고 있다.

북한 역시 상당한 강수를 두고 있다.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괴선박의 실체를 밝히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본이 침몰한 괴선박 인양 등을 통해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북한은 더욱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2002년초로 기대했던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동이 쉽게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911 테러 대참사 이후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국제적으로 확산된데다 이미 한글이 적힌 유류품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특히 하시모토(橋本)에서 고이즈미 내각으로 바뀌면서 일본 열도에 우경화(右傾化) 바람이 강해졌고, 대북 정책기류도 상당히 강성으로 흐르고 있다.

이와 함께 선체사격으로 인한 과잉대응 논란에 대한 진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침몰한 괴선박이 북한 배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등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북 식량지원 보류, 전세기 운항 중단, 수출입품 검사 강화 등의 제제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측 대응이 최대 변수로

여기서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중국 측의 대응이다. 진상규명의 열쇠는 침몰한 괴선박이 쥐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괴선박이 침몰한 지점이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란 점이다.

각국 해군의 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 공해(公海)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EEZ여서 현실적으로 중국의 승낙 없이 강행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태다.

중국은 이미 일본이 자국 EEZ에서 괴선박에 선체사격을 가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등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선박 인양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많다. 중국이 인양을 승락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해군이 인양과 경비를 위해 출동하는 등 한국 주변 해역에 긴장이 긴장감이 돌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인 면에서 침몰한 괴선박은 수심 100㎙ 정도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여 인양 자체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잠수정으로 침몰위치를 확인한 후 선체의 파손상태, 해저상황, 조류 등을 조사한 후 선체에 와이어를 묶어 끌어올리면 된다.

다만 침몰지역은 겨울부터 봄까지 바람이 매우 거세 작업환경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해 할 대목은 미국과 일본의 신속한 공조와 일본의 강력한 감청능력이다. 미국의 정찰위성은 괴선박을 출발시부터 추적하기 시작해 항로와 영상정보를 일본 방위청에 열결해 주었고, 방위청은 괴선박의 교신내용을 입수했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와 P-3C가 괴선박을 찾아냈고, 고속 순시함이 출동, 괴선박을 추적했다. 미ㆍ일 간의 이러한 군사공조는 미국과 일본이 이미 연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본 방위청의 무선감청은 전국 9개의 전파 탐지시설에서 이뤄지며 방위청통합막료회의(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산하의 전파부가 운영하고 있다. 1983년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에서도 보여주었듯이 가공할 감청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괴선박 교신내용 감청의 경우 미군의 사전정보에 따라 전파 탐지 권역을 좁혀서 얻어 낸 성과란 점에서 한계도 지적되고있다.

일본 군 당국은 감청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이 주파수와 암호체계를 교체, 일본의 대북 정보전 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2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괴선박사건과 관련한 관련국 동향 등을 관계부처로부터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설명> 침몰한 괴선박. 일본은 북한 공작선 임을 감지하고 이미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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