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혼돈과 불확실의 2002

지난 해 한국의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요약하는 4자성어로 오리무중(五里霧中) 다사다난(多事多難) 점입가경(漸入佳境) 목불인견(目不忍見) 등 4가지가 꼽혔다.

하지만 이들 한자성어는 올해 한국경제를 전망하는 분석도구로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4대 지방선거와 16대 대선에 따른 정국의 복잡성과 혼돈, 결과의 불확실성이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지 예측키 힘들다는 얘기다.

월드컵 등 큰 호재도 적지않으나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대선국면은 경제의 흐름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변수다.

특히 세계 경제의 회복시기와 속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책당국자들과 기업들 마저 ‘정권게임’에 휘둘린다면 우리경제는 또다시 IMF 망령과 같은 불길한 기운에 휩싸일 우려가 크다.

오리무중 지난해 내내 시장을 짓눌러왔던 하이닉스반도체 현대투신 대우차 대한생명 한보 서울은행 등 6대 현안 처리가 새해로 미뤄졌다.

정부 당국자들은 1월중 하이닉스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지분맞교환 및 일부공장 매각협상에 대한 양해각서(MOU)체결을 낙관하고, AIG컨소시엄과의 현대투신 매각협상도 성사국면에 확실히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또 서울은행의 경우 우량은행과의 합병이나 국내 컨소시엄 매각으로 가닥을 잡았고, 대생과 한보는 우선 협상대상자를 결정한 상태여서 반환점을 돌았다고 말한다. 대우차에 대해서도 “노조와의 단체협약 개정문제가 걸림돌로 남아있으나 GM이 대우차를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자신한다. 한마디로 6대 현안은 오리무중이 아니라 명약관화(明若觀火)라는 것.

하지만 협상 상대의 성격이나 그동안의 행태로 미뤄볼 때 정부의 장담대로 문제가 술술 풀릴 것 같지 않다.

특히 대선 등을 앞둔 우리 정부의 약점을 노려 협상상대가 무리한 조건을 계속 내걸 경우, 헐값매각 논란 등을 꺼리는 정부나 채권단이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관측통들은 “6대 현안중 1월내에 한두개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시장은 상반기 내내 혼돈상태가 될 것”이라며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 등 실물부문의 취약성으로 경기회복 시점마저 늦어진다면 우리경제는 또 한번 오리무중 상태를 헤맬 것 “이라고 우려한다.

다사다난 초법적 성격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구조조정특별법으로 지난해 현대건설 하이닉스 쌍용양회 등 거대 시한폭탄의 뇌관을 상당부분 제거한 경제팀은 연초부터 개각 회오리에 휩싸이게 됐다.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이 양호한데다 현 정부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점을 들어 경제팀 개편 가능성이 적다는 의견도 상당하나 “공적자금 관리 소홀, 정책일관성 결여 등의 실정에다 선거내각의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대거 경질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경질되든 유임되든 경제팀은 재정의 조기 집행을 통한 적극적 경기부양,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 극대화, 선거경제의 소프트랜딩 추진과정에서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내야한다.

현대그룹의 해체로 판도가 뒤바뀐 재계도 유로시대 도래 등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와 업종의 성쇠(盛衰)에 따라 급격한 재편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은행소유 규제가 어떤 식으로든 완화될 경우 금융재벌의 탄생으로 재계의 역학구도가 크게 변하게 된다. 재계가 줄곧 요구해온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및 총액출자한도제 철폐나 법인세 폐지 등의 쟁점도 선거국면을 타고 한층 요란하게 부각될 전망이다.

접입가경 2년간의 혹독한 침체기를 거쳐온 증시가 월드컵 및 선거 특수를 타고 또 한번의 대세상승 국면에 접어들 수 있느냐는 물음은 올해 최대의 화두다. 기업실적 향상과 경기회복 등 펀더멘털의 건강성이 증시활황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은 상식.

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한 만큼 증시라도 떠야 그에 따른 자산효과로 소비 증가→투자 및 생산 증대→소득증대의 선순환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주가가 오르면 은행 등에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주가가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수 있는 만능신(萬能神)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증시는 여전히 뉴욕 증시의 종속변수다. 지난 해 한국증시가 독립을 선언했던 기간도 한때 있었으나 실적으로 말하는 미국증시의 입김은 태풍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선물과 현물을 오가며 서울 증시를 들었다 놨다 하는 양상이 점입가경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외국인들의 움직임이 지수의 바로미터가 돼버렸다.

목불인견 고스톱 판에서 ‘역(逆) 고(GO)’를 부르는 기세 마냥, 다수의 힘을 만끽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위세를 부릴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이라는 확실한 후보를 가진 그들은 이미 집권당의 기분을 내고있다. 그런 만큼 학계 언론계 등은 물론 관계 인사들의 줄서기나 복지부동은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목불인견의 장면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현 정부의 임기는 사실상 월드컵 종료와 함께 올 상반기에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권엔 임기가 있어도 경제엔 임기가 없는 법.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항상 잃지말아야하는 경제관료들이 권력을 쫓고 인기에 영합하면 나라일을 떠나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국운을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에 목불인견의 인간군상들을 보지않을 수 있다면 국민들은 그것으로 반쯤은 만족해도 좋을 것이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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