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검룡소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다. 우리가 산소처럼 매일 호흡하는 한강. 그 발원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서울 시민 중 몇일까. 한강의 발원지는 강원 태백시(창죽동 금대봉골)에 있다.

이름은 검룡소. 깊은 겨울이지만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다. 새해 여행의 행선지를 강원도 산골로 잡았다면 한 번 들러봄직하다. 매일 대하는 한강의 모습과 의미가 달라진다.

원래는 강원 평창군 오대산의 산샘‘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꼽혔다.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명시한 문헌상의 기록은 없지만 예로부터 유명한 샘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등거의 모든 지리지에 명시돼 있다. 물맛이 매우 좋고 다른 물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맑은 빛을 간직한 채 서울까지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의 양반들은 강가에서 뜬 물을 먹지 않고 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나가 깊은 곳으로 흐르는 우통수의 맑은 물을 길어 마셨다고 전해진다.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로 여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이 길고 짧은 것을 밝혀냈다. 하늘에서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이 근거가 됐다. 지도상의 거리를 측정하고 답사를 해 본 결과 검룡소의 물줄기가 약 32㎞ 더 길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1987년 국립지리원이 한강의 발원지로 공식 인정했다.

검룡소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장장 514㎞를 굽이치고 달려 서해안으로 흘러든다. 우리 민족이 한강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어 왔다면 검룡소는 그 역사를 키운 샘물인 셈이다. 검룡소는 큰 길(35번 국도)에서 약 7㎞ 떨어져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지날 수 있는 비포장과 포장이 섞인 찻길이지만 나머지 1.3㎞는 일반 차량이다닐 수 없다. 걸어야 한다. 그러나 힘들지 않다. 경사가 거의 없는 분위기 좋은 산길이다. 잎이 넓은 산죽밭을 지나고 캄캄할 정도로 가지가 하늘을 가린 낙엽송숲을 통과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 길 옆으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다고 한다. 희귀종인 하늘다람쥐도 산다. 그래서 길 옆의 금대봉과 대덕산은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낙엽송숲의 끝지점에 육각형의 정자가 놓여있고 그 옆에 기념비가 서 있다. ‘태백의 광명정기 예 솟아 민족의 젖줄 한강을 발원하다’라고 쓰여있다. 기념비 뒤로 집채만한 암반이 버티고 있고 그 위에 검룡소가 있다.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지만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다. 폭이 약 5m 둘레가 약 20m 정도 되는 동그스름한 샘이다. 샘 한쪽 구석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구멍이 보인다.

더 높은 기슭에 있는 제당궁샘, 고목나무샘, 물구녕 석간수 등의 샘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모여 이 곳에서 다시 솟아나온다고 한다. 크기는 작지만 에너지는 만만치 않다. 하루에 용출하는 물의 양은 평균 2,000~3,000톤. 비가 잦은 계절에는 5,000톤까지 뿜어낼 때도 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검룡소 샘물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시사철온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섭씨 9도를 유지한다. 한여름일지라도 손을 집어넣으면 채 1분을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겨울에는 반대이다. 영하 20도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골짜기의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 주변에는 눈이 쌓이지만 샘과 용틀임 폭포 주변은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눈 속에서 헤매던 산짐승들이 물을 마시러 떼를 지어 찾아온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는 이렇게 생명을 지켜주는 샘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검룡소에서 흐르는 물줄기.주민들은 ‘용틀임폭포’라고 부른다. 물의 온도 때문에 깊은 겨울에도 이끼가 빛을 잃지 않는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2/01/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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