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충북 단양군 영춘(永春)

영춘은 충북 동북쪽 가장자리에 자리하여, 동쪽은 경북 영주군 부석면과 단산면, 남쪽은 단양의 가곡면, 서쪽은 어상천면, 북쪽은 강원 영월군 하동면과 남면에 닿아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이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단양군 영춘면에 지나지 않지만, 고구려때는 을아단(乙阿旦)현이었다. 또, 신라의 경덕왕은 이 고을을 자춘(子春)으로 바꾸어 나성(奈城:오늘의 제천)군에 넣었고 고려조에 이르러 오늘날의 이름인 영춘(永春)으로 자리잡았다.

1399년 조선조 정종 원년에는 충청도에 편입, 감무(監務)를 둔 적이 있는가하면 1413년 태종 13년에는 현이 된 뒤, 1895년 고종 32년에 군으로 승격하기도 했으나 1914년 다시 단양에 편입, 오늘에 이른다.

지금부터 100여전 영국인 여류여행가인 ‘비숍’의 기행문은, ‘그럭저럭 영춘땅에 도착하였다. 강가의 경치는 단양에서부터 극치를 이뤄, 이 고을까지 계속되는데 산이 높고 골이 깊은데다가 기이한 바위와 푸른 강물이 가히 절경이다.…’라고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무릉도원(武陵桃園)에 비견된다는 이 고을 사람들의 말이 그리 허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가 내게 묻기를, 어찌해 산속에 사느냐(問余何事栖碧山)/ 웃고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한가롭구나(笑而不答心自閑)/ 복사꽃 물위에 아득히 떠 흘러가니(桃花流水香然去)/여기가 바로 별유천지인가 하노라(別有天地非人間)’라고 읊은 이태백의 시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이 영춘고을은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을 맞댄 접경지인지라 고구려 장군 온달(溫達)에 얽힌 땅이름이 화석이 된채 전해오고 있다.

이를테면 신라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반월모양인 온달산성을 비롯하여 온달장군이 보초를 세워 신라군의 첩자를 검색했다는 군간(軍間)나루, 그 나루터에 지금은 군간교(軍間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 있다.

또, 장발리의 선돌마을엔 온돌장군의 누이가 오빠가 신라군과의 전투에서 장열히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한이 사무쳐 선채로 돌이 되어버렸다는 선돌(立石)이 이끼를 머금고 북녘을 향해 서있다.

온달이 쉬어간 바위라고하는 쉬는 돌(休岩 :상리), 온달굴(溫達窟:하리), 온달이 들었다 놓았다는 둔들 바위(상리)등…, 온달장군과 연관된 땅이름과 전설이 참으로 많다.

이 고을에 전설로 구전되어 오는 온달장군 남매의 이야기를 모아, 온달산성 아래 온달굴 어귀 강가에 조형물로 재현해놓았으니, 이른바 온달공원이다. 이 공원의 조형물을 하나하나 돌아 보노라면 마치 옛날 할아버지한테서 듣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영춘(永春)’은 글 뜻대로라면 ‘봄이 길고 여름이 짧은, 즉 늘봄’이다. 충주 다목적댐의 설치로 물이 차오르면서 나타난 자연생태계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이 고을은 땅이름처럼, 봄이 길고 여름이 짧은 ‘늘봄(永春)’이 되었으니 ‘영춘’이란 땅이름 탓일까.

<사진설명> 온달산성에서 바라본 영춘 고을과 군간나루에 세워진 군간다리(軍間橋).

입력시간 2002/01/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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