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이래서 ‘3류’일까?

이래서 ‘3류’인가 봅니다. 지난 한해 한국영화계를 결산하면서 ‘조폭영화’의 유행을 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에 나온 다른 작품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우정과 복고의 판타지가 있는) 넓게 보면 ‘친구’(전국 813만명)로 시작해 ‘신라의 달밤’(435만명), ‘조폭마누라’(519만명), ‘달마야 놀자’(369만명)를 거쳐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관객을 모으는 ‘두사부일체’까지. 조폭영화는 한국영화의 부활을 이어가는 1등 공신이었으니까요.

‘만들었다’하면 400만명씩 터지니 말문이 막힐 뿐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영화는 2001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시장점유율 50%(현재49.5%)에 육박했습니다.

2000년 35.1%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였습니다. 이제 한국 영화는 더 이상 할리우드 공세에 흔들리지도, 극장에 협박하듯이 스크린쿼터제를 외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번 돈, 들어와 있는 돈도 넘쳐나는데 이제는 은행까지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보류 위헌판결에 따라 5월이면 ‘제한상영관’까지 생기게 되면 못 만들 영화가 없고, 공룡배급망으로 마음껏 상영관을 잡을 수 있으니 새해에도 한국영화의 기세는 여전할 것입니다.

지난 한해 한국영화를 두고 말도 많았습니다. 할리우드의 못된 배급방식을 배웠다느니, 알고 보면 똑같이 돈 벌려고, 적은 배탱으로 ‘대박’을 터뜨려 보겠다고 만든 영화가 작가주의 영화란 허울을 쓰고 마치 ‘독립운동’하듯 아우성치는 것에 대한 씁쓸함도 있었습니다.

조폭영화에 대한 우려도 높았습니다. 조폭영화의 유행은 분명 사회심리의 반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 소재의 다양성을 해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극단적으로 ‘한국영화의 퇴조’ ‘홍콩영화의 전철을 밟고있다’는 비난도 나왔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두사부일체’까지 나오고 보니 적어도 조폭영화가 이제는 정말 일부에서 우려하는 적당히 베끼고, 급조해서 돈 벌려는 수단으로까지 타락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원조로 사람들은 흔히 ‘친구’를 거론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확신이 듭니다. 대신 진짜 원흉은 ‘신라의 달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신라의 달밤’은 그냥 웃고 볼만한 영화라고 판단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연출은 산만하고 다분히 단선적이며 인물에 대한 깊은 통찰도 없지만 장면 장면의 재치와 과장이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겠죠. 덕분에 지분까지 챙긴 김상진 감독은 돈방석에 올랐고,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 제작까지 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후 소위 웃음과 조폭을 결합시킨 영화들이 이어지면서 “아, 이 영화말로 어쩌면 지난해 3류 조폭영화의 출발점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최근 비디오로도 출시가 돼 다시 한번 봤습니다.

도저히 개봉 때처럼 웃으며 볼수가 없었습니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 보니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TV에서 심야방영해 우연히 3번째 보게 된 ‘마누라 죽이기’는 여전히 재미있었고, 페이소스도 보였습니다.

‘신라의 달밤’비디오가 나오고 나서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도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소재를 떠나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없기 때문입니다.

코믹영화와 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그 ‘인생이 배인 웃음’의 유무입니다. 감독의 전작인 ‘주유소습격사건’과 비교하면 분명한 퇴보입니다.

물론 돈은 더 벌었지만. 차라리 ‘조폭 마누라’나 ‘달마야 놀자’에는 유치하고 단편적이지만 그 인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욕은 이들 영화가 더 먹었습니다.‘두사부일체’는 그 욕마저 뻔뻔스럽게 받아치며 ‘돈벌었다’고 즐거워 합니다.

어차피 상업영화는 일회용입니다. 한번 보면 다시 찾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좋은 상업영화는 ‘마누라 죽이기’처럼 이따금 봐줄 만합니다.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한심하다면 그것은 분명 3류입니다. 먼저 나왔다고, 당시에는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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