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문화시민운동, 생활속의 작은 실천이 큰 변화

광화문역이나 이화여대 입구역 등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유달리 긴 역을 이용할 때마다 신통스럽게 생각되는 습관이 있다. 특히 인파가 넘쳐 나는 러시아워때는 고맙기까지 하다.

에스컬레이터를 좌우로 나눠 이용자가 편리한 대로 오른쪽은 그냥 서 있되 왼쪽은 걸어간다. 혼잡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어느덧 백화점 공항 등 인구 밀집지역의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일반화된 풍경이다.

2002년 월드컵은 그렇듯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지금우리 사회는 친절ㆍ질서ㆍ청결 재교육중이다.

방송을 통한 대국민 홍보는 그 중 작은 하나. “국제축구연맹 FIFA의 슬로건이 뭔지 아세요? 페어 플레이, 즉 공정한 경기가 스로건입니다”-“아. 그렇군요. 우리 시민들도 교통 질서를 지키며 페어플레이를 하면 멋진 월드컵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교통방송(TBC)의 문화시민 캠페인 홍보 방송이다. TV 방송을 통한 홍보는 더욱 체계적이다.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KBS1 TV ‘출발 2002 월드컵’을 통해 매주 화~금 오후 10시 50분에 10분짜리 프로로 나가고 있다. 올해는 130회 방송에 650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변화하는 일상과 의식의 단면 엿보여

월드컵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회장 이영덕, 이하 협의회)는 지금 한국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생활속의 작은 실천이 쌓이고 쌓여, 우리 삶의 질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온다는 것.

개고기 금지 등 국민 정서를 거스르기 십상이었던 관주도의 88올림픽과 달리,월드컵 문화 캠페인은 밝은 일상의 빛깔로 다가 온다. 바꾸어 말하면, 월드컵 문화운동이란 우리의 변화한 일상과 의식에 대한 보고서다.

가까이는 12월 21일 프레스 센터에서 가졌던 ‘대중교통 분야 문화시민대상 시상식’이 그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버스와 택시 등 두분야의 모범 사업자와 운전자 42명이 뽑혀, 상금 등 부상이 수여됐다. 친절ㆍ질서ㆍ청결 등 협의회가 내건 세 가지 대원칙을 대중 교통 분야에서 수행한 데 대한 격려였다.

차에 오르는 승객에게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를 꼭 건네고, 한 차례 운행이 끝나면 반드시 내부를 진공 청소기로 훑는 중부운수 최승돈씨. 매일 사내 화장실을 청소하고 초등학교 건널목에서 교통 질서 캠페인을 펼치는 대전 승마육운 택시 기사 이원기씨 등 한국 갤럽 조사 연구소의 현장 조사를 거쳐 뽑힌 주인공들이다.

대중 교통에 대한 협의회의 지속적 관심 덕택에 외국 여행객의 선입견도 많이 누구러질 전망이다. 지금껏 그들에게 한국이란 난폭 운전의 천국이었다.

인터넷이 빠질 수 없다. 협의회가 지난 11월 한달 동안 3대 운동의 실천 과제에 대한 일반의 조사, 결과가 표어로 제정되기까지의 주욕이 바로 인터넷이다.

전국 900명에 대해 실시한 설문 조사를 근거로 친절에서는 ‘택시기사는 한국의 얼굴’, 질서에서는 ‘차선은 생명선, 신호는 생명등’, 청결에서는 ‘화장실은 그 나라의 얼굴, 깨끗이 관리하자’ 등 쉽고 선명한 표어가 선정됐다(전국 900명 참여).


창구앞 한줄서기 등은 정착단계로

협의회가 벌였던 캠페인 중 매표 창구와 에스컬레이터 등에서의 한줄서기 캠페인은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업적이다.

당초 유럽 유학생의 제의가 발단이 돼 자체 논의를 거쳐 시행했던 사업이다.

인터넷을 통한 홍보와 국민 홍보도 중요한 창구. 1999년 11월 1일 개설된 홈 페이지(www.2002culture.or.kr)sms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운영, 1일 평균 350여건, 월 평균 1만여건에 달하는 접속 실적을 자랑한다.

이밖에 격월간으로 30,000부씩 발행되고 있는 ‘문화시민’도 월드컵의 존재를 새삼 깨우쳐 준다.

이들 사업은 주먹구구식 발상이 아니다. 1999년부터 KDN(KoreaData Network)과 갤럽 등 조사전문기관에 의뢰, 매년 실시해 오고 있는 ‘월드컵 개최 도시시민의식 수준 평가’ 결과에 따라 수립되고 있는 실천 항목이다.

지난해 말 10개 개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됐던 문화시민지수 조사는 재미있는 결과 하나를 보여 주었다.

‘서귀포-광주-대전-서울-부산-수원-전주-인천-대구-울산’. 경기장 등 공공장소에서의 질서지키기, 화장실 등 공공시설의 청결도, 먼저 인사하기 등 세부 항목에 따라 점수가 일일이 매겨져집계된 결과다.

개최지 시민에 대해 무작위로 실시된 1대1 면접 조사의 결과는 시민 의식에 대한 현장 조사라는 점에서 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실질적으로 던지는 의미다.

이 협의회는 1997년 6월 ‘월드컵의 성공적개최와 국위 선양’을 목표로 설립된 한시법인이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지원법 제22조(민간추진운동)에 따라 설립된 이 단체는 민간부문과 관의 연결 지점에, 정부가 설립한 법인이다.

2001년의 경우 국고 22억3,300만원, 월드컵 조직위원회 18억, 국민체육진흥기금 10억 등 모두 50억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새마을운동 중앙회, 바르게살기 중앙 협의회 등 각분야 77개 사회운동 단체(1만6,247명)와의 연계가 중요하다.

대학교수 13명 관광관련업무 종사자와 교육전문가 46명 등 강사 59명을 확보해 조직한 ‘월드컵 문시민교육 전문 강사단‘이 그 전도사.

서울대 문용린 교수(전 교육부 장관)는 문화시민 생활윤리에 대해, SBS 축구해설위원 신문선씨는 스포츠 리더십에 대해 강의한다. 인기 방송인 이다 도시는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차이 등에 대한 강의를 맡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기업, 음식점, 숙박업소, 군대 등 요청이 오면 주제에 맞는 강사가 출장 강의를 실시한다.


한일관계 순화시키는 역할도

월드컵과 문화를 연계시키는 작업은 공동 개최라는 데서 자칫 경쟁 일변도로 치닫을 수도 있을 한일 관계를 순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95년 5월 월드컵 공동 개최가 확정되자, 양국에는 월드컵을 문화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키자는 목소리가 하나처럼 터져 나왔다. 98년부터 지금가지 모두 5차례 펼쳐진 한ㆍ일 대학생 자전거 투어(양국에서 번갈아 개최), ‘한국인이 본 일본, 일본인이 본 한국’ 등 토론회 등이 대표적.

그러나 게임은 이기는 자의 것.

지난해 6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한일축구 저널리스트 세미나’는 이 잔치가 갖고 올 득실을 언론인의 관점에서 따져 보는 자리였다. 99년 ‘외국인이 본 한국인과 한국 사회’, 2000년 ‘한국인이 본 일본, 일본인이 본 한국’ 등 잇달아 열린 심포지엄의 연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여러 지적 중 특히 한국과 일본이 16강 진출에 실패할 경우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들뜬 분위기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럴 경우, 월드컵은 ‘그들만의 잔치’로 남게 되고, 월드컵 유치에 다른 경제적 부담이나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란 우려다.

또 시도 때도 없이 개었다 흐렸다 하는 미묘한 양국 관계와 월드컵 붐이 어떻게 맞물릴 지도 관건가운데 하나라는 말도 나왔다.

월드컵 문화사업은 결코 남에게잘 보이기 위한, 한시적 사업이 아니다. 21세기 초입의 한국에게 월드컵이란 급변한 세계 질서속에서 우리의 세계성과 고유성을 가름해 보는 훌륭한 시험대이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4 15:34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