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미스터리 얼마가 진짜인가?

“내가 지금까지 성사시킨 계약 가운데 가장 복잡한 것이었다.” 자유계약선수(FA) 박찬호(28)가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 기자회견을 가진 12월 23일(한국시간)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푸념했다.

하지만 정작이 말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태평양 건너편에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계약 소식을 LA 및 텍사스 지역 언론을 통해서만 지켜보던 국내 팬들이었다. 현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계약 조건이 천차만별인데다 내년 연봉이 600만달러~1,420만달러로 무려 820만달러의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에 의혹은 부풀어만 갔다.


1+4는 5보다 크다?

텍사스와 보라스가 이날 언론에 공개한 공식적인 계약조건은 5년 동안 연봉총액 6,500만달러(평균연봉 1,300만달러)였다.

여기에다 일반적인 FA 계약과 달리 박찬호는 독특한 옵션을 추가했다. 그 내용은 박찬호에게 일단한 시즌을 텍사스에서 보내게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다시 FA를 선언할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만일 텍사스 구단이 박찬호의 기량에 만족한다면 연봉외에 600만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고 계약기간을 모두 채워주면 된다. 거꾸로 구단이 내년 시즌 후에 박찬호가 더 이상 팀 전력에 보탬이 안 된다고 판단할 경우 600만달러라는 추가 옵션없이 FA 자격으로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의문점은 왜 박찬호가 8년 동안 정들었던 LA 다저스와 계약 기간 문제 때문에 결별해놓고 텍사스로부터 5년을 보장받는 대신 불안정한 1+4년 계약을 했느냐는 것이다.

평균연봉 1,300만 달러 전후로 줄다리기를 하던 다저스는 박찬호와 계약 기간 부문에서 의견을 완전히 달리했다. 다저스가 4년 이상 계약을 들어주지 않고 연봉조정신청까지 하며 1년 계약을 고집하자 박찬호는 미련 없이 텍사스로 떠났다.

박찬호는 올 시즌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FA 대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리하게 등판했다.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첫해인 내년도에 부진할 경우 박찬호는 자칫 FA 미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찬호는 당연히 코너에 몰리지않기 위해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무리한 등판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투수들의 천국’ 다저스타디움이 아닌 ‘투수들의 무덤’ 알링턴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해야 하고, 지명타자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에 새로 적응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박찬호로서는 전혀 유리할 게 없는 조건처럼 보인다.

이런 우려에 대해 보라스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옵션 600만달러는 박찬호에게 보장된 돈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박찬호가 옵션을 행사하는 것이지 텍사스에 의해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다년 계약을 할 때 다양한 옵션이 삽입되는 것이 흔하다.

트레이드 불가조항, 최저출장보장, 포지션 변동 불가, 연봉유예 등이 가장 대표적인 데보라스가 박찬호에게 연봉외에 웃돈을 주기 위해 새로운 조항을 만들어 넣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보라스의 주장은 옵션 600만달러를 보너스처럼 박찬호에게 보장해줬다는 것이다.


투수 연봉 5위의 내년도 연봉은 600만달러?

보라스는 또 연봉은 2002년 1,100만달러를 시작으로 해마다 100만달러씩 늘어나며, 옵션도 2003년 100만달러, 2004년 100만달러, 2005년 150만달러, 마지막 시즌에 250만달러씩 나눠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라스에 따르면 박찬호는 내년 시즌에 옵션없이 연봉만 1,100만달러를 받게 돼 올해 LA다저스로부터 받았던 990만달러보다 110만달러 밖에 인상되지 않는다. 마지막 시즌인 2005년에는 무려 1,750만달러를 손에 쥘 수 있게 되는 순차별 지급방식이다.

구단 축소 및 연봉 거품론으로 얼어붙은 FA시장에서 박찬호는 옵션을 포함할 경우 평균연봉(1,400만달러)으로 따져 로저 클레멘스(뉴욕 양키스ㆍ1,545만달러) 마이크 햄턴(콜로라도 로키스ㆍ1,512만달러) 케빈 브라운(LA다저스ㆍ1,500만달러) 마이크무시나(뉴욕 양키스ㆍ1,475만달러) 등에 이어 투수연봉랭킹 5위로 올라선 것은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로 느껴졌다.

이런 안도감은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www.mlb.com)와 텍사스 지역신문인 포트워스스타텔레그램(web.star-telegram.com)에서 12월 24일 ‘박찬호는 연봉총액 7,100만달러 중 무려 1,600만달러를 지불유예(defer)형식으로 받는다’라고 보도하면서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찬호는 이 돈을 마지막해에 이자까지 포함하여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되면 첫해 연봉이 1,000만달러에서 턱없이 모자라는 600만달러까지 떨어지게 된다.

연봉 유예는 구단의 다급한 재정난을 해결해 주기 위한 것으로 총액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이자까지 포함시켜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2001 정규리그 개막 전 팀 재정이 넉넉치않았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제리 콜란젤로 구단주가 직접 랜디 존슨, 루이스 곤살레스 등 주전 선수 대부분을 설득시켜 연봉 유예를 합의했다.

이런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선수단과 프런트가 팀워크를 갖추게 되면서 애리조나는 창단 4년 만에 초고속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까지 만들어냈다.


연봉유예는 ‘독’이 아닌 ‘약’이 될 수도

투자 회사를 경영하는 텍사스 구단주 톰 힉스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년 연속 텍사스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로 밀려나자 시즌 중 감독을 조니 오츠에서 제리 내론으로 교체했다.

또 시즌이 끝나기 무섭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최강팀으로 변모시켰던 존 하트를 새 단장에 앉혔다. 하트는 텍사스로 옮기자 마자 돈은 최대한 아끼면서 약점을 하나씩 메워갔다.

팀 연봉 총액을 8,400만달러로 묶으면서 존 로커, 토드 반 페플, 제이 파웰 등으로 마운드 높이를 높였고, 대형 외야수 칼 에버렛까지 중심타선에 보탰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라파엘 팔메이로, 케니 로저스 등 간판선수들이 구단주의 팀 재정비과정에 적극 협조하고 나섰다.

실제로 박찬호도 연봉 지불유예가 알려지고 난 후 “로드리게스나 로저스 같은 선수들이 내연봉을 마련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고마움을 표시한 뒤 “나 역시 팀 연봉 상한선을 지켜주기 위해 그런 조건에 합의했다”고 떳떳하게 밝혔다.

박찬호의 입단식 때 이례적으로 로드리게스와 팔메이로가 동석했다는 것은 프런트 뿐만 아니라 선수단의 노력으로 끌어들인 선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AP통신은 최근 텍사스가 스토브리그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했다고 평가했다.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텍사스가 2002 시즌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등과 함께 지구우승을 다툴 가능성도 있다.

댈러스모닝뉴스에서 실시된 인터넷 투표에서도 박찬호의 영입을 80% 이상이 반겼고, 로드리게스는 “박찬호처럼 젊은 투수와 5년을 함께 뛰게 돼 흥분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 강한팀 ▦ 편안한 팀 ▦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팀에 뛰고 싶어했던 박찬호의 요구조건이 모두 충족될 가능성도 있다. 단 연봉을 몇 년 후에 받는다는 것을 꾹 견딘다면.

정원수 체육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4 15:54


정원수 체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