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산책] 일본의 식민지 대학교육

일본의 식민지 대학교육정책의 비교 연구
(송한용 일본 와세다대 객원연구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민지를 지배한 경험이 있는 국가는 나름대로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펴왔다. 피지배 민족을 순화시키고 자신들의 통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육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도 마찬가지이다. 일제의 식민지지배 정책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다.

송한용(일본 와세다대 객원연구원)씨가 최근 ‘중국사연구제16집’에 발표한 논문 ‘일본의 식민지 대학교육정책의 비교 연구’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비교적 자세히 살펴 본 시론적인 글이다.

조선총독부 관할 아래 있었던 경성제국대학과 관동군이 직접 지휘한 만주 건국대학의 건립과정을 비교하며, 일제 식민지교육정책의 단면을 설명하고 있다.

식민지에 대학을 처음 세운 나라는 16세기의 스페인이다. 본국의 지식체계를 식민지에 전파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식민지 대학 건립의 목표였다.

이와 유사하게 유럽의 식민지 대학은 토착민의 유럽화와 근대화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과 비기독교 민족에 대한 멸시가 주요한 유럽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는 사정이 달랐다. 일본의 식민지는 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동일한 문화권의 국가였고, 특히 한국은 일본에 문화적 우월감까지 갖고 있던 터였다.

송씨는 논문에서 “일제의 교육정책, 특히 대학교육의 목표는 식민지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서구와는 다른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의 창출이었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한국에서 주창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란 ‘내선일체’(內鮮一體)등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몇 가지 구호로 정리할 수 있다.

일제는 식민지의 효율적인 지배와 통치를 위해 대학을 철저히 이용했다. 그래서 식민지의 성격과 사정에 따라 대학의 설립과정과 목표가 달랐다. 일제 하 한국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도 설립과정과 교과 내용에서 몇 가지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일제는 한국 내의 대학 설립을 최대한 억제했다.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 민족 사립학교의 줄기찬 대학 승격 요구를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1945년 일제 패망까지 경성제국대학을 유일한 한국 내 대학으로 남게 한 것이다.

송씨는 “일제는제국주의적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강화시키는 법률연구와 통치에 필요한 관리양성, 내선일체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 구축을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1924년 문을 연 이 대학은 법문학부(법학, 문학, 사학, 철학과)와 의학부 등 제한된 학과만 개설했으며, 한국학생도 꼭 필요한 만큼만 입학시켜 교육시켰다. 한국인의 입학은 항상 정원의 40% 수준으로 제한했다.

식민지에서 가르치기는 비교적 위험(?)해 보이는 법문학부를 개설한 것도 관립 학교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민족적 자각과 자주적 교육을 지향한 한국사립학교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송씨는 “총독부는 경성제국대학으로 하여금 이 부문에 대한 교육을 독점하도록 하고, 사립학교에서는 철저히 금지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1941년 이공학부가 개설될 때 까지 이 같은 대학 운영의 양상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일제는 40년대로 접어들며 전시비상체제로 돌입, 문과의 정원을 축소하고, 이공계 및 의학부의 정원을 50% 늘리는 등의 조치를 내렸다.

즉 경성제국대학은 한국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일제의 필요에 의해 설립됐고, 일제의 필요에 따라 개편된 고급 통치 보조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을 통해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건국대학(1938년 건립)은 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일제는 급조한 만주국의 국가체계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만주국이 독립국임을 천명하기 위해 특별한 인재양성이 시급했다.

이에 따라 일제 관동군 장성들은 건국대학 설립을 구상, 제안했고 결국 관동군이 주축이돼 대학이 만들어졌다. 개설된 학과는 정치, 경제, 문교학과와 근로실습, 군사훈련 등이었다.

즉 건국대학은 일반적인 인재가 아니라 오로지 관동군이 필요로 하는 ‘만주국’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정치대학이었던 것이다. 이 같이 괴뢰정부의 인재양성 필요성에 따라 만주국에서는 다른 대학의 설립이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됐다. 대부분의 서구 제국들이 회피했던 정치대학을 일제는 만주국에 만든 셈이다.

국내에서 일제식민지교육정책을 테마로 한 경성제국대학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만주국 건국대학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은 비록 시론의 형식이지만 새로운 연구과제를 제시한 글이라는 생각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 식민지교육정책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철훈 문화과학부기자

입력시간 2002/01/08 19:3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