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가지치기', 업계 지각변동

D램사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매각, "국부유출" 우려

하이닉스반도체가 마침내 D램 사업을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매각하기로 했다. 양측은 지난해말 미국에서 열린 2차 협상에서 이 같은 내용에 의견을 좁히고 이 달 중 구체적인 제안서를 교환, MOU(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하이닉스 안팎에서는 D램 사업 매각을 둘러싸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부유출이라는 시각과 하이닉스의 거품을 제거한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는 것.

하이닉스가 생존을 위해 마련한 ‘D램 사업 매각’이라는 카드가 앞으로 세계 반도체산업과 한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D램 사업 팔겠다”

하이닉스는 D램 사업을 매각하고 나머지 S램ㆍ플래시메모리와 비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전문업체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11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D램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신 앞으로 비메모리분야를 집중 육성, 세계적인 회사로 육성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이닉스의 D램 생산라인은 국내 이천(2개), 청주(2개), 미국 유진(1개)등 모두 5개다. D램과 비메모리반도체를 같이 생산하고 있는 이천(1개), 청주(1개) 라인을 포함하면 7개 라인이 매각대상에 올라있다.

비메모리를 생산하고 있는 5개 생산라인(구미 2개, 청주 2개, 이천 1개)과S램ㆍ플래시메모리 생산라인(이천 1개)은 하이닉스의 주력 생산라인이 된다.

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의 중장기비전이 종합 반도체회사가 아닌 비메모리 전문회사로 바뀔 것”이라며 “양사가 지분교환을 통해 전략적 제휴를 유지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산정 문제가 가장 큰 고비

하이닉스는 D램 사업을 매각하는 대가로 마이크론의 지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매각대금으로 받는 지분을 현금으로 환산할 경우 40억~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 채권단측이 70억달러까지가격을 받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가격산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더구나 마이크론이 부채탕감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채권단과의 조율이 필요할 전망이다. 하이닉스의 구조특위의 한 관계자는 “매각대금과 부채탕감 문제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사안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며 “부채탕감에 대한 요구가 들어올 경우 어느 정도까지 서로가 양보할 수 있을 지가 협상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사업부문이 새로운 독립법인으로 탄생할 경우 지분을 19.9% 확보할 계획이다.

마이크론은 지분 맞교환을 통해 현금투입 없이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반면 하이닉스는 지분 대신 현금을 유입하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미뤄뒀던 투자를 위해 비용을 충분히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특위 관계자는 “이제 MOU를 체결하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좁히는 단계인 만큼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면서“최근 반도체 가격이 올라가고 있어 협상의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2강 체제로 변화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D램 사업을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은 35% 정도로 삼성전자(30%)를 능가하게 된다. 더구나 마이크론은 일본의 도시바(시장점유율 5~6%)와의 제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어 삼성전자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마이크론-하이닉스-인피니온-도시바 등 순으로 질서를 유지하던 D램 업계가 삼성전자-마이크론의 2강이 시장의 60~70%를 차지하는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인피니온이 도시바와의 합병협상이 불발로 끝나면서 어떤 생존전략을 마련할 지도 재편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D램사업을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자 삼성전자도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이크론에 비해 차세대 반도체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 SD램과 램버스 D램 등에서 크게 앞서 있다고 판단했으나 상황이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하이닉스가 DDR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지난해부터 램버스D램 시장에도 진출, 이 과실을 마이크론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겉으로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마이크론이 어느 정도 강력한 힘을 갖게 될 지 관심이 많다”며 “앞으로 마이크론이 어떤 전략을 구사할 지에 대비해 새로운 대응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램 사업 매각에 대한 시각차이

하이닉스의 D램 사업 매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D램 사업을 매각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반도체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같은 국부유출 주장은 마이크론이 글로벌 경영전략에 따라 한국내 생산라인을 단순 하청기지로 활용하거나 일부 공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대우자동차와 같은 헐값 매각 시비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D램사업 매각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 구조특위측은 “마이크론이 하이닉스공장을 실사한 뒤 자사의 이탈리아나 싱가포르 공장에 비해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렸다”며 “공장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서는 경쟁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며 “하이닉스의 모체인 현대전자, LG반도체 시절부터 쌓여온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가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하이닉스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조영주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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