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 챙겨야 내일이 있다"

술렁이는 TK, 당권·대권분리 목소리 높여

한나라당의 대구ㆍ경북(TK) 지역 정치인들이 최근 들어 부쩍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11일 대구를 기반으로 했던 박근혜 부총재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며 이회창 총재에게 도전장을 던졌을 때만해도 당내 TK지역 의원들에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박 부총재는 경선 출마 선언 직후 당내에서 ‘왕따’를 당하다시피하는 몇가지 사건들이 발생했고, 일부 TK지역 출신 의원들은 “TK의 표를 갈라 여당만 좋게 된다”며 노골적으로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도 채 못돼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TK 출신 의원들의 정서가 “TK의 지분을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 감지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TK정서는 ‘이회창 지지’에 서 있지만 내심 이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는 박근혜 부총재에게도 온정적인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명분은 ‘TK 정서’, 속셈은 ‘차차기’

이 같은 미묘한 기류는 강재섭ㆍ박근혜 부총재간의 지역 대표성 경쟁과 맞물리면서 진폭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올 대선에서 박 부총재는 이회창 총재와 각을 세운 반면 강 부총재는 이 총재를 밀고 차차기 대선을 도모하는 상반된 노선을 걷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회창 대세론’이 거의 굳어진 한나라당 내에서 박 부총재가 이 총재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도 차차기를 겨냥해 ‘TK대표주자’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 부총재는 연말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TK지역을 누비며 보내는 등 이 지역을 ‘바람몰이’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

소위 TK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총대를 맨 것은 최근 당지도부와의 갈등으로 정책위의장을 그만둔 김만제 의원이었다. 비록 초선이기는 하나 경제부총리와 포철회장을 지낸 화력한 경력을 배경으로 대구 경북 지역 의원 중에선 중량감이 있는 인사이다.

그는 3일 대구 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를 지지해야 하지만 TK가 단순히 들러리로 전락하거나 대선이후 또다시 외면당하는 상황이 되선 안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4일에는 “카리스마적이고 제왕적인 대통령 시대, 1인 보스의 정당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이 총재를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이를 토대로 당내 각 세력이 각자의 컬러를 토대로 세력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의원은 박근혜 부총재에 대한 지원의사를 밝혀 주류그룹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은 강재섭 부총재. TK대표 주자라고 자부하는 그는 6일 한나라당 기자실에 들렀다가 김 의원에 발언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받고 “우리(TK)가 구심점을 갖고 대선에 임해야지 각자 (이 총재의) 직할부대처럼 뛰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면서 “막연히 누구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구 경북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밀어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TK의원들이 봇물터지듯 이 같은 발언들을 쏟아내는 이유는 뭘까. 정가에선 TK의원들이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있는 이 총재에 대해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강재섭 의원의 발언은 의미 심장하다. “14대 대선에서 대구 경북이 YS를 60% 이상을 밀었지만 선거후 얻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의원들은 다 떨어졌다. 이번에도 선거후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있다. 좋은 의미에서 우리 몫도 챙기고 후보(이 총재)도 도와주자는 이야기이다.”


주류도 급부상한 PK에 대한 견제심리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에서, 더욱이 영남 지역의 중추인 TK의원들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나라당 권력구도는 TK의원들이 정서적 불안감을 느낄만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은 10ㆍ24 당직 개편이후 부산ㆍ경남 출신 의원들이 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무성 비서실장과 권철현 기획위원장을 비롯한 PK인맥이 당내에서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자리잡았고, 정형근 의원은 물론 박관용 의원 등 민주계 출신 의원들도 권력의 동심원 내에 포진해 있다.

당내에선 이 총재가 PK의원들을 선호하는 것과 관련, “김영삼 전 대통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나라를 운영해본 PK의원들의 경륜을 중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 TK의원들은 뚜렷한 주류그룹으로 부상한 인사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등 적잖은 소외감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의 한 관계자는 “TK지역에선 ‘이러다가 토사구팽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TK인사들은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는 예방책으로 ‘당권ㆍ대권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로부터 전당 대회전에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야 한다. 당권 대권 분리가 되면 TK지분을 통해 당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강재섭 박근혜 등 차세대 리더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김만제 의원)

“대선 공약으로 당권ㆍ대권 분리를 내걸어 자연스럽게 분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선전 당무 등을 위임할 기구(부총재단 등)를 구성해야 한다. 이 총재를 밀어 정권 창출을 하고 나면 대구 경북도 다음 정권에는 이를 이어 갈수 있다.”(강재섭 부총재)

TK 지분찾기용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박근혜 부총재 역시 “ 대선전에 당권ㆍ대권을 분리해야한다”며 이 총재측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총재측 “갈등 싹틀다” 못마땅

이 총재측은 이에 대해 관망세를 보이며 신중한 대응을 하고 있다. 성급히 진화에 나섰다가 역효과가날 수 있고 대부분의 TK의원들이 이 총재 지지쪽에 서있기 때문에 그리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텃밭인 영남에서 갈등구조가 생겨나는 것에 대해선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편 정가에선 이 같은 TK 의원들의 행보에 대해 “지역 정서를 자극하고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설명> 강재섭 부총재는 박근혜 부총재와 TK대표주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최종욱/사진부 기자>

이태희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09 18:56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