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샌 재수사, 놓쳤나? 놔줬나?

진승현 게이트 핵심 김재환씨 해외도피, 검찰 수사의지에 '의혹'

“좀 달라질까 하고 기대했더니 역시나다.” 검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신뢰를 상실했던 검찰이 막판에 국정원 경찰의 고위간부들을 구속하는등 제대로 수사를 하는 듯하다가 이전의 ‘행태’를 되풀이 했다. 바로 핵심 수사대상의 해외도피이다.


출국 40일 뒤에 확인“국민이 믿을까?”

검찰이 진승현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전 MCI코리아 회장 김재환씨의 출국사실을 40여일 뒤에야 알았다고 밝혀 의구심을 사고 있다.

재수사를 하는 등 검찰 스스로가 큰 망신을 당한 사건의 핵심인물에 대한 출국금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가 40일이 지난뒤에야 해외도피 사실이 확인됐다는 식의 발표를 곧이 곧대로믿어줄 국민들은 많지 않다.

한 법조계 인사는 “비록 법무부 관행상 출금자의 출국시 사후통보를 않는다 하더라도 수사팀이 출국금지를 요청한 지난해 11월 중순이후 한번도 김씨의 출국여부를 추가확인하지 않은 사실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12월 21일 김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결과 김씨가 전달 14일 인천공항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내역을 입수한 뒤에도 일주일 동안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의구심을 더하고 있다.

이때문에 야당은 “검찰이 일부세력과의 사전교감 하에 김씨를 내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근거없는 음해”라고 주장하는 검찰은 1월 3일 김씨에 대해 알선수재 등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수배 절차를 밟기로 했다.

검찰은 또 김씨가 미국에 당분간 머물고 있을 것으로 보고 LA등 미국 주요 도시 현지 교민단체 등에 김씨의 수배전단을 배포,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의거해 김씨의 신병인도를 공식 요청키로 했다.

그러나 김씨가 지난해 11월2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흔적이 포착되는 등 이미 비행기 도착지인 로스앤젤레스를 벗어난 것은 물론, 제3국으로 도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신병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이번 재수사도 미완으로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커졌다.


의혹사건 마다 핵심인물들 ‘도피’

검찰이 대형 비리사건 수사 때마다 주요 피의자나 참고인에 대한 신병확보소홀로 낭패를 자초한 사례는 한두번이 아니다.

검찰의 낭패 자초 사례는 진승현ㆍ이용호ㆍ정현준 게이트 등 정ㆍ관계 로비의혹이 불거진 게이트 수사때마다 반복돼왔으며 이외에도 고속철도 로비의혹사건, 대우그룹 분식회계ㆍ횡령 사건, 세풍(稅風)사건 등 정치권 수사를 목전에 두고 발생해왔다.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는 진씨의 구명 로비스트이자 정ㆍ관계 로비수사의 열쇠인 김씨의 도피로 개점휴업상태에 빠졌다. 검찰은 김씨가 이미 해외로 도피한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채 현상금을 내걸고 검거반을 가동하는 등 소동을 벌여 초동수사의 헛점을 노출시켰다.

불과 네 달 전에 터진 ‘이용호 게이트’에서도 비리혐의자에 대한 뒤늦은 출국금지가 논란이 됐다.

검찰은 이씨와 함께 속칭 ‘이용호 펀드’라 불리는 삼애인더스의 주가조작을 벌인 D금고 실소유주 김영준씨에 대해 이씨가 구속된지 3일 뒤 출국금지했으나 그는 이미 한달 전인 8월에 해외로 나간 상태였다.

검찰은 이에 앞서 이씨 내사과정에서 김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씨의 구속영장에 김씨를 ‘이씨의 공범’으로 적시해놓고도 제때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2000년 수사팀의 이씨 비호의혹을 수사한 특별감찰본부가 임양운 당시 서울지검 3차장이 이씨와 밀접한 관계였던 전 R전지 전무 윤명수씨에게 이씨 내사를 알려준 사실을 적발했으나 윤씨는 특감본부 출범 직전 일본으로 출국했다.

역시 정ㆍ관계 로비 여부가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던 ‘정현준 게이트’ 수사도 늑장출금으로 미궁에 빠졌었다. 금감원 관계자 등에 대한 로비의혹을 받고 있는 신양팩토링 사장 오기준씨와 동방금고 사장 유조웅씨가 미국으로 출국함으로써 검찰은 불법대출의 배후에 대한 수사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검찰은 사건과 관련, 금감원의 고발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었음에도 이들이 출국한지 일주일이 지나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충분한 범죄단서를 확보하고도 피의자를 놓쳤다 뒤늦게 사법처리에 이른 사례도 적지않다. 지난해 7월 세금감면의 대가로 2억6,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김범명 전 자민련 의원은 검찰이 소환통보를 하고도 출국금지를 하지않은 틈을 타 중국으로 출국했다.

검찰은 이후 각고의 설득작업 끝에 김 전 의원을 국내로 불러들여 같은 해 11월 구속기소했다. 수출신용장을 조작해 은행으로부터 1,200억원을 불법대출받은 전 ㈜새한 부회장 이재관씨도 출국금지 하루 전에 일본으로 떠났다 4개월 뒤에 귀국해 불구속기소됐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 핵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세풍사건의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과 대우그룹 비리사건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고속철도 로비의혹 사건이 프랑스 알스톰사 로비스트 최만석씨도 검찰의 본격 수사 직전 해외로 도피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검찰에 대한 불신만 깊어져

국민들이 검찰에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알만한 검찰이 정치적 사건 등 미묘한 사건 때마다 비슷한 유형의 낭패를 자초한다면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특별검사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키우는 것으로 검찰의 입지를 더욱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이용호씨 정ㆍ관계 로비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차정일 특별검사팀이 2년전 서울지검의 수사에 이어 지난해 9월 대검의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잇따라 밝혀내면서 의혹 규명을 향한 잰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서 도드러나고 있다.

특검팀은 삼애인더스 전환사채(CB) 발행 알선 명목으로 여운환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이기주(57) 전 한국통신 파워텔 사장을 구속했다.

또 특검 수사에서 이 전 사장이 2000년 6월말 정건용 현 한국산업은행총재를 통해 삼애인더스 CB 발행을 추진중이던 D증권사 박모 사장을 소개받은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 전 사장은 지방 방송사 기자 출신으로 정ㆍ관계에 발이 넓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검팀은 또 ㈜한국전자복권 자금이 이씨의 주가조작에 이용됐다는 혐의를 포착, 이 회사 전 대표인 박모씨 등 간부 2명을 소환조사하고 이 회사의 2년치 매출전표를 제출받아 자금 흐름을 추적중이다.

한국전자복권 자금의 연루의혹은 한때 업계에 소문으로 떠돌면서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으나 주가조작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김모 전 대표가 잠적하면서 검찰 수사선상에서 사라졌었다.

특검팀의 조사대상에는 정 총재, 삼애인더스 보물선 발굴사업 연루의혹을 받고있는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 및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과 이씨 비호의혹을 받은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과 임양운 전 광주고검차장 등 당시 수사라인, 이씨 계열사에 취업했던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 등이 올라 있다.

특검팀의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도 머지 않아 마무리될 예정인데다 관련 의혹자들의 본격 소환조사도 이뤄질 예정이어서 검찰 수사의 부실여부가 드러날 전망이다.

손석민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2/01/10 14:09


손석민 사회부 herme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