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돌부처, 허물어지고 말것인가?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29)

혼돈 속의 대국이었다. 이창호가 '형세판단의 귀재', '돌부처'라고 하는 것은 그가 불리할 때도 유리한 척 표정관리도 잘해가면서 찬스가 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세돌에게만은 그가 십수년 보여주었던 포커페이스가 아니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이창호가 도저히 자신의 바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졸전 끝에 그렇게 2국도 기울었다. 검토실은 흥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봉수 유창혁 최명훈 등 강호의 고수들이 불과 1시간 전에 "흑이 곧 던질 것 같다"라던 형세가 거꾸로 이창호가 던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역전패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이창호의 브랜드를 송두리째 뒤흔든 이 사건. 이창호가 불과 100수 언저리에서 그것도 역전패로 돌을 거둔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한 때였다.

이창호는 시간도 충분했다. 수읽기의 공간도 평소의 이창호였다면 일도 아닐 만큼 좁고 간단했다. 어린 이세돌의 당찬 자존심 선언에 부동심의 대명사 이창호도 흔들렸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세상에! 천하의 이창호가 두번씩이나 이 애송이 18세 소년에게 발목이 잡히다니, 이창호의 100번째 타이틀은 그렇게 난관에 부딪혀 있다. 다만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0:2로 리드 당한 LG배는 제3국을 석달 후에 지속하기로 했던 것이다. 석달 후,,,, 이때는 과연 바둑가의 인물지도가 바뀌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흥분했다.

팬이란 사람들은 원래 간사하기 그지없어, 이창호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으면 쥐 죽은 듯 고요하다가도 새로운 세력이 발흥한다 싶으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과거의 인물이 아직도 건재함에도 새로운 인물을 기대이상으로 갈구하게 되는 누를 범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형세'를 오판하는 경솔을 내비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듯 이창호에게서 벗어나고파 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창호는 도저히 현존하는 인물 가운데에서 적수가 없으니 제발 이세돌이 나서서 상황을 바꿔주기를 바랬다고나 할까.

그렇게 축제 같은 기분에서 바둑가는 술렁였다. 돌이켜보면 세대교체란 것은 몹시 즐겁고 흥겨운 일이었다. 바둑가의 역사를 50년이라고 쳐도 50년 동안 세대교체는 서너번밖에 없었다. 그것은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의 순서 대로였다.

따라서 이번엔 이세돌이 승리를 거둔다면 또 한번의 세대교체를 우리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 한번의 패배가 이창호로 하여금 나락으로 내딛게 하는 결정적인 한판일까만 적어도 이세돌로서는 그렇게 중차대한 한판이었다.

바둑가의 전망도 단호했다. 정말 단호했다. 아무도 이창호가 이긴다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유독 필자가 이창호의 대역전의 전망을 내놓은 바 있는데 다수의 고함소리에 그만 파묻히고 말았다.

다수의 생각은 이랬다."볼 것이 없다. 이세돌이 이창호를 꺾는 방법을 알았다.

이긴 바둑도 이기고 진 바둑도 이기는데 무슨 더 말이 필요한것일까." "이창호가2:0으로 뒤진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20대가 되고 난 후 그가 일단 이렇게 뒤진채 출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는 150수에서 돌을 거두기도 처음이다. 따라서 이창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뭔가에 씌워진 느낌이다."

[뉴스화제]



·유창혁 9단, 맥심배 4강서 서능욱과 격돌

작년대회 우승자 유창혁 9단이 맥심배 준결승에 진출해 대회 2연패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12월28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맥심배 준준결승에서 유창혁 9단은 노장 윤기현 9단을 맞아 254수만에 극적인 백반집승을 거두어, 결선토너먼트 대진추첨에서 부전을 뽑아 준결승에 오른 서능욱 9단과 결승진출을 다투게 되었다.

이날 대국에서 유 9단은 왕년의 국수 윤기현 9단의 견실한 반면 운영에 다소 고전했으나 마무리 단계에서 극적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며 반집승을 거두었다.

한편 맥심배 준결승 대국을 벌이게 되는 유 9단과 서 9단은 지난해 세 번의 대국을 가진 데 이어 금년 벽두부터 맞대결을 펼쳐 관전자들의흥미를 끌고 있다. 결승에 선착해 있는 김일환 9단과이 대국의 승자가 우승을 다투게 된다.

입력시간 2002/01/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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