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부실 싹트는 SI 프로젝트…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결코 포기할수 없는 직업 윤리가 있다.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 그리고 취재원 보호다.

그러나 취재를 하다 보면 두 준칙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보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 뉴스의 소스를 밝히고 싶은 충동이 일기 때문이다.

‘A씨에 따르면’,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하는 식의 익명 기사 보다 정확한 뉴스 제공자를 밝히는 것이 기사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익명을 요구하는 취재원을 굳이 밝히는 무모한(?) 기자는 없다.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전산 SI(시스템통합) 프로젝트의 부실 가능성을 파헤친 이번 커버스토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익명 요구를 많이 받은 취재였다.

사업 자체가 수백억원대의 초대형 사업인데다 그 발주처(정부나 공공기관)나 수주 기업 모두 저가 공사로 인한 부실의 가능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취재는 주로 공사 입찰에서 떨어진 기업이나 사업 컨소시엄에서 배제된 벤처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숱한 중소 벤처회사의 간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략적인 실상은 말할 수 있으나 반드시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간곡히 요구했다.

자칫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동종업계에서는 물론이고 벤처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대형 SI업체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익명 요구는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국내 IT 업계의 불건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벤처는 반짝이는 기술력과 순발력, 투명성이 생명이다.

지금의 국내 벤처는 참신한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진짜 벤처가 아니라 구태의연한 기존 기업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4대 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정치권 등과의 검은 거래가 횡행하고 공사 수주에서도 온갖 비리가 난무한다.

여기에 국책 공사를 싹쓸이하는 대형 SI업체의 하도급 횡포까지 가세, 그야말로 기존 오프라인의 부패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유착과 비리로 인해 발생하는 부실 공사다. 초대형 국책 전산화 프로젝트는 국가의 미래 정보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많은 벤처인들은 ‘현재 같은 출혈 수주와 검은 로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대형 SI사업이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올 엄청난 부실의 위험성을 모르는 체 하고 있다. 그것이 더 큰 문제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15 19:05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