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동 유럽의 음습한 음모와 사랑

'라스트 런', '건블라스트 보드카'

아름다운 건축물과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동유럽의 도시들이 최근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관찰하다보면, 서글픔이 먼저 밀려온다.

싼 물가와 우아한 정취로 인해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시대극 세트나 냉전 이후 소련을 대신할 범죄 도시로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풍스런 분위기에 감탄하다가도 "저런 배경으로 밖에 쓰일 수 없는가"하는 아쉬움을 갖게된다. <로마의 휴일>이 끼친 영향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 한 편으로 얻게되는 이국과 도시에 대한 인상은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동유럽 도시의 클래식한 정취를 범죄의 새로운 트렌드로 활용한 영화 두 편을 만나본다. 영국 출신인 안소니 히콕스의 2001년작 <라스트 런 Last Run>(18, 아틀란타)은 우크라이나의 키에프,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루마니아의 베이칸,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빈과 바덴과 쉬르츠그라그, 헝가리의 소프론 등을 쉴새 없이 옮겨다니며, 냉전 이후의 스파이전을 박진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지역을 옮겨 다녀 각 나라의 이해 관계와 개인간 인연도 복잡해서 이들 도시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새가 없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 직전. 프랭크(아만드 아산테)는 소련 스파이 제거작전 중, 임신한 동료 에레나를 저격수 칼로프의 총에 잃고 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정치가들은 적과도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옳은 일인가를 프랭크는 자문한다.

비엔나에서 조용히 살고있던 프랭크는 옛 동료로부터 전 KGB 방첩대장 부카린(유르겐 프로크노프)의 망명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소련에 대한 기밀을 많이 갖고있는 부카린의 망명을 막기위해, 칼로프가 고용되었다는 말을 들은 프랭크는 복수심에 불타 이를 수락한다.

<라스트 런>은 오르넬라 무띠, 유르겐 프로크노프가 출연하는데서도 알 수 있듯, 과거의 향수를 자아내는 전형적인 첩보물이다.

반면 프랑스 출신인 장 루이 다니엘의 2000년 작 <건블라스트 보드카 Gunblast Vodka>(18, 크림)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만들어진다는 스너프 필름(실제 성 행위와 살인 장면을 담은 필름. 실재 여부에대해서는 논란이 있다)을 소재로 한 형사 버디 무비다.

폴란드의 팔등신 미녀들이 단체로 출연하는 패션 쇼와 스트립 쇼, 나치가 파놓은 비밀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있는 폴란드의 고성 등 눈요기 거리가 적지 않지만, 기본은 성격과 국적이 다른 두 형사의 수사에 맞추어져 있다. 제목은 폴란드산 최고급 보드카의 이름이자, '원샷'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폴란드의 고풍스런 소도시 보클로에서 전갈 문신이 새겨진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멋쟁이 독신 바람둥이 형사 마렉(마리우스 푸조)이 사건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중, 미국 영사의 전부인이자 모델 에이전트인 제인(엔지 에버하트)이 실종된다.

이에 미국 측에서는 모사드 출신의 과묵한 특별 수사관 아벨(괴츠 오토)을 파견한다. 이스라엘 군인이었던 아내를 게릴라에게 잃은 슬픈 과거를 간직한 아벨은, 아내를 닮은 제인의 수색 작업에 몰두한다.

티격거리던 마렉과 아벨은 피해자의 손톱 끝에 묻은 화강암을 근거로 해서, 러시아 마피아의 대부 샤샤(유르겐 프로크노프)의 고성에 숨어든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1/1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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