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값 폭등을 붙잡겠다고?

부도안 안정화대책, 급한 불 끄기 아닌 근본적인 대책수립 필요

엽기적인 폭등세를 타던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최근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나온 직후부터 일단 한풀 꺾였다.

강남지역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잠실 주공아파트 등 저밀도 지구 재건축 아파트단지 중심으로 내림세로 돌아서고, 기존아파트도 강남권 외곽에서부터 호가가 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저밀도 재건축 단지인 잠실 주공 1단지 13평형은 2억4,000만원을 호가했으나 정부의 발표 직후 매물이 사라진 가운데, 매도를 원하는 집주인들은 1,000만원 가량 가격을 낮춰 부르고 있다.


교육문제 등 빠진 일과성 대책

그러면 대책의 명칭처럼 강남의 아파트 값은 안정될 수 있을까. 세무조사의 위력에 힘입어 당분간 급등세는 진정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는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다.

안정화 대책이 교육문제와 재건축 문제, 분양권 전매 등 화인(火因)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세정 당국의 일시적인 세금징수활동 강화(세무조사)라는 급한 불 끄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학원 단속 방침외에는 일언반구조차 없어 정부의 사태파악능력과 종합적인 정책조정 및 수립 능력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는 이번 강남 지역 아파트 폭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더 이상 교육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방식을 규정하고, 재산상의 문제에까지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8일 긴급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값 폭등 대책을 마련했다. 강남권에서 시작된 집값 오름세가 강서·강북 등 서울 전지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집값 폭등행진을 방치할 경우 1980년대 후반 같은 망국병으로 커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주요 내용은 공급확대와 재건축 시기 조절, 세무조사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집과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의 공급을 늘리고 세무조사 등을 통해 가수요를 차단해 집값, 특히 아파트 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 큰 틀이다.

여기에 집값 추가 폭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강남지역 재건축과 관련, 재건축 심의를 통해 재건축 시기를 분산시켜 일시에 집중돼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핵심은 세무조사다. 세무조사는 세금추징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 효과가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급확대는 언뜻 보기에는 새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건설교통부가 이미 발표했거나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정책을 ‘짜집기’ 한 연초 업무보고 수준이다.


건설경기 활성화가 부른 '예고된 화'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패한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외면한 채 집값 폭등과 투기의 책임을 국민과 부동산 업자에게 전적으로 떠넘기는 식의 처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실패도 함께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그동안 건설경기 활성화라는 명분아래 부동산 투기를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대거 ‘무장해제’시켜 투기 억제 수단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이번 기회에 주택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정부가 내놓은 주택경기 활성화 및 시장안정 대책은 무려 22차례에 달하다.

이를 통해 정부는 70년대 이후 유지해왔던 부동산 투기방지 정책의 골간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98년 1월 소형평형 의무비율 폐지, 12월 분양가 자율화 전면시행, 99년 2월 분양권 전매 전면 허용 등 굵직굵직한 사안만 56건이나 된다. 담당자들도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다.

당시 정부의 정책 주안점은 주택의 안정적 공급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건설경기부터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이후 내수경기를 중심으로 경기회복 조짐이 가시화하면서 건설경기 진작책은 아파트 분양시장을 거대한 투기판으로 변질시켰다.

얼마전 실시된 서울 1차 동시분양에서는 수 만명의 청약 경쟁자들이 몰려 4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상당수 청약자는 내집 마련이 아니라 당첨만 되면 앉아서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 수 있다는 계산을 염두에 둔 가수요 세력이었다.

여기에 정부의 청약제도 변경으로 3월이면 180만 명에 이르는 청약통장 1순위자들이 추가로 대거 분양시장에 뛰어들어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이번에 강남 재건축아파트가 투기대상이 된 것은 분양권 전매의 전면 허용에 '원죄'가 있다.

정부는 98년 8월 2회차 중도금만 내면 입주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해 준데 이어 99년 2월부터는 계약금만 내면 분양권을전매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분양권 전매 허용으로 아파트 분양시장은 투기꾼들의 '판'이 돼버렸다.

모델하우스 앞에 장사진을 친 소위 떴다방(이동 중개업자)들이 투기바람을 잡고 프리미엄을 조작하면서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또, 계약금도 내기 전에 이루어지는 음성매매를 통해 편법과 탈세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분양권 전매 허용의 순기능은 효력이 다한 반면 역기능이 크게 부각되면서 분양시장의 왜곡현상이 극에 달해 있다"며 "분양권 전매를 허용하되 2회 이상 계약금을 낸 실수요자들에게 제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집값안정을 위해서는 분양권 전매 조치부터 금지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오락가락 주택정책이 수급불균형 초래

집값 상승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중소형 주택의 수급 불균형 문제도 건교부의 오락가락하는 주택공급정책에 원인이 있다.

건교부가 98년 1월부터 소형평형 의무비율을 폐지한 이후 주택건설업자들이 마진이 큰 중대형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는 바람에 서민대상의 중소형 아파트는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강남 집값 급등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인 재건축 기대심리도 소형아파트 의무비율폐지의 후유증 중의 하나다.

이와 함께 규제완화 차원에서 이루어진 분양가 자율화 조치는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물론, 기존 아파트까지 덩달아 상승시키는 역기능을 낳았다.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97년 평당 508만원이던 분양가는 2001년 말에는 829만원으로 63% 이상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문제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권 아파트 가격의 이상 폭등은 올해 수능 점수가 대폭락하고 심화학습을 중시하는 새로운 수능제도가 2005년부터 적용된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명문고와 유명학원이 밀집해 있는 강남권에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정부가 주민들의 주거 선호도를 바꾸어 놓을 만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최근 들어 새 학년을 앞두고 자녀의 강남지역 학교 진학과 강남식 사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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