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월드컵] "문화 르네상스 기둥을 세운다"

월드컵 10개 개최도시, 한국 알리기 문화이벤트 개발에 총력

월드컵이 우리 문화력을 총정리하는 자리로 다가 오고 있다.

국민 정서는 내팽겨 둔 채 혐오식품이라는 이상한 잣대로 보신탕을 금지하는 등 획일적 문화사대주의라는 떫떠름한 기억을 남겼던 88올림픽식의 접근법은 이제 사라졌다. 10개 개최 도시에게 2002 월드컵은 문화 르네상스로 다가올 태세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자체 논의를 거쳐 개최도시별로 이미지를 선정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 부산은 ‘영화의 도시’, 대구는 ‘섬유ㆍ패션의 도시’, 인천은 ‘동북 아시아의 허브’, 광주는 ‘예향의 도시’, 대전은 ‘과학 기술의 도시’, 울산은 ‘산업 도시’, 수원은 ‘화성-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전주는 ‘소리의 도시’, 서귀포는 ‘휴양지’ 등의 CI(통합 이미지)로 거듭난다.

이같은 구도는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행사가 문화 월드컵을 지향한다는 대세를 웅변한다. 우리 고유의 풍습이 획일화된 연출 없이, 지역별로 특화돼 생생하게 드러나는 국제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별로 특화된 행사 마련

전통의 도시 전주가 퓨전이란 시대적 조류에 합류,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전주비빔밥(대표 이사 홍성윤)은 전래 제조법에다 외국인의 구미에 맞는 단맛과 감칠맛을 보완, 세계인이 언제라도 즐길 수 있는 패스트 푸드로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전주는 또 올 연말까지 종합경기장, 도립국악원, 소프트웨어 지원센터 등 공공기관 55곳을 대상으로 ‘담장 없애기 사업’도 추진중이다. 전통과 쾌적한 환경이 어우러진 월드컵 개최 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반대로 대전은 미래로의 경로를 택했다. 105개에 달하는 연구소와 벤처 기업, 테크노 파크, 대덕 테크노 벨리, 엑스포 과학공원 등 첨단 과학기술산업도시라는 이미지를 문화로 극대화한다는 것.

뮤지컬 연극 등 각종 공연으로 조성된 흥은 엑스포 과학공원에서의 국제 로봇쇼, 분수 음악제 등 과학 잔치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과학ㆍ교통ㆍ미래지향ㆍ환경도시 등 첨단 과학을 주제로 대회 기간에 펼쳐질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이 그것. 대전시는 18일까지 ‘2002 월드컵 대전 경기 문화행사’ 주관대행사를 공모, 이번 문화 마당에 힘을 쏟고 있다.

경기장 문화 행사에 700만원, 일반 문화 행사에는 2,200만원씩을 투입, 이벤트 기획 연출 전문 업체에 이번 행사를 일임하기로 한 것.

인천은 세계로 간다. ‘가자! 국제 도시로’를 최대의 표어로 내건 인천의 목표는 ‘인천과의 만남ㆍ세계와의 만남’이다. 송도를 첨단 산업의 메카로, 인천국제공항을 그 관통 지점으로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먼저 6월 8일 오후 2시 종합문화예술회관 등지에서 시립예술단과 인기가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축제를 시작한다.

축구공 묘기, 거리 퍼포먼스, 마임 등 시내 문화벨트를 따라 펼쳐질 거리 축제는 오후 7~9시 문학야구장 축하 공연으로 이어진다. 인기가수, 합창단, 민속공연단 등이 펼칠 공연이다. 이어 30분 동안 대형 축구공 연화를 내세운 불꽃놀이가 이날의 대미를 장식한다.

인천은 또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을 의식, 최근 연예계에서의 ‘한류열풍’을 이벤트화 한다. 숭의동 시립야구장이나 월미공원 등지에서 중국인이 참여, 춤과 노래자랑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인천시는 지금 천진시 대련시 단동시 등 인천과 자매 결연을 맺은 도시들과의 공동 제작 등 유치 방안을 추진중이다.

인천은 개최 도시 중 가장 많은 문화행사를 추진중이다. 세계전통 민속예술제, 행위예술제, 여성국구 등 모두 14개의 마당이다.

이밖에는 광주(11개)-서울(10개)-서귀표(10개)-부사(9개)-전주(9개)-대구(7개)-울산(7개)-대전(5개)-수원(5개)의 순이다.

부산의 뮤지컬 '자갈치', 대구의 '신천 환경 미술축제', 광주의 '남도무대예술공연', 울산의 뮤지컬 '처용', 전주의 '한지페스티벌', 서귀포의 '해녀축제' 등은 가장 개성적인 것이 곧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한겨울을 연습 열기로 달구고 있다.


불교계 템플 스테이 사업, 청정열차도

이번 월드컵 문화행사는 개최 지역만의 잔치가 아니다. 한국 사찰의 청아하고 초탈스런 분위기를 한 번이라도 접한 외국인은 그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월드컵 특수는 불교계에도 조용한 바람으로 들이닥쳤다. 월드컵과 관련, 국내 명찰들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템플 스테이’가 그것.

5월 20일부터 6월말까지를 집중 사업 기간으로 설정, 외국어 안내와 설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통도사(양산 본사, 부산 포교원), 조계사, 송광사, 봉은사, 화계사, 연등국제불교회관 등 7대 명찰을 중심으로 5년전 결성된 ‘외국인 사찰 안내 자원 봉사대’(운영 위원장 선업 스님)가 4일 대전 스타피아 호텔에서 결의한 사항이다.

4월 인터넷상에 홈 페이지를 개설, 외국어가 가능한 불자를 중심으로 활동 경험 등을 공유한다는 계획도 이날 거론됐다. 현재 자원봉사대는 사찰 당 40명 수준.

철도청은 곧 ‘월드컵 청정 열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원적외선이 방출되는 바이오 세라믹을 이용한 세면기와 음이온 발생기 등을 배치하는 것을 비롯, 천정의 연결 부위를 철판이 아닌 고무로 대치하는 등 안락한 승차감을 내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철도청은 이 같은 새 개념의 열차를 4월부터 새마을호부터 시험 운행, 외국인 승객의 반응을 점검하며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또 다른 한·일 문화전쟁

이번 월드컵이 문화 전쟁이란 사실은 공동 개최지인 일본과의 비교에 이르러 더욱 자명해진다.

경기 개막에 앞서 공수를 통해 고동개최지인 일본과 동시에 열리는 보물급 문화재 전시는 개최지의 열기를 반영하는데 손색없다.

오사카역사박물관(3월16~5월6일)의 '한국의 명보(名寶)전'과 도쿄국립박물관(6월11~7월 28일)의 '도제기마인물상'등 특별전과 거의 동시에 국내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생활 문화 비교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일본미술명품전'(5월14일~7월14일)이 열린다.

그러나 시민들은 한일 양국의 비교와 관련, 이번 월드컵이 상대 평가 절하의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시민의 73.8%는 월드컵 기간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보다 일본을 더 많이 찾을 것이라고 답했다. 준비상태가 우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과 비교해서 가장 뒤지는 것으로 생각되는 분야로는 '미소로 먼저 인사하기-좌측통행·교통질서 지키기-공공질서 지키기'등의 순으로 꼽혔다.

또 '우리가 일본보다 앞서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34.2%나 돼, 우리가 한수 꺾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와 관련, 음식점과 화장실의 청결 상태, 정직한 판매와 정찰요금제 등이 시급한 실천 과제로 꼽혔다.

이같은 집계는 지난해 문화시문운동중앙협의회(회장 이영덕)가 11월12~30일 19일 동안 시민 3,000여명과 외국인 324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을 통해 치렀던 조사의 결과다.


국가 이미지 창출의 호기로 삼아야

문화 관광부 월드컵ㆍ아시안 게임 대회지원본부 손진호 행정사무관은 “스위스는 시계, 파리는 패션쇼 등 강력한 국가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커다란 약점”이라며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지 창출의 호기”라고 말했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이장섭 연구원은 “한국이라하면 아직도 전쟁과 분단을 연상하는 외국인들이 많은 것은 문화 이미지가 없기때문”이라며 “방문객과 지역주민의 공동축제로 문화 행사가 될 때,우리의 문화 이미지가 배가 된다”고 말했다.

장병욱 주간한구부기자

입력시간 2002/01/18 17:03


장병욱 주간한구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