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돈으로 변한 잡동사니들…

청계천을 ‘서울 도심의 슬럼가’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노후한 아파트숲, 매연으로 찌든 잿빛 콘크리트 고가, 어지럽게 놓여진 상점 앞 물건과 오토바이 굉음…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이 곳에 들어오면 왠지 빨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만에 청계천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갖게 됐다. 골동품이 거래되는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청계천에서도 고물상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황학동을 찾았다. 차 한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만큼 좁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골동품점들은 한마디로 만물 백화점이었다.

일제시대부터 1980년대초반까지 우리 생활에서 쓰였던 온갖 잡동사니 중고품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열리는 골동품 경매장도 마찬가지였다.

1층은 식당, 2층은 70년대식 다방이 있는 건물3층의 옛 봉제공장 자리에서 벌어지는 골동품 경매는 우리 근ㆍ현대사의 일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부분이 코흘리개 시절 많이 보고 직접 썼던 것들이었다.

이발소 그림, 반공 포스터, 옛 달력, 색동 인형, 유엔 성냥갑, 나무 주판, 어린이 잡지, 빈 콜라병… 소박한 사람들의 오랜 손 때가 묻어 있는 것들이었다.

이곳 황학동 취재는 잠시나마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새 것만을 찾으며, 손 때가 묻은 옛 것을 쓰레기 취급하고 버린 내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것을 선호한다. 말 그대로 ‘마지막 끄트머리로 나온’ 최첨단(最尖端)의 것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조상 없이 우리가 있을 수 없듯, 옛 것이 없어 새 것이 나올 수 없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와 골동품을 더욱 소중히 보존해야 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1/22 14:26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