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이 보물되는 세상] "이게 내가 그린 그림 맞아?"

작가 본인도 헷갈리는 교묘한 위조수법, 공인감정제도 정착시급

1999년 1월 세계 미술계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자화상 진위 여부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 났었다. 그때까지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작품이 진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가짜라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뉘른베르크 소재 한 미술관 관장이 자기박물관에 있는 것이 진짜 렘브란트 작품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X레이 등 정밀 검사 결과 헤이그에 있는 1629년 그림은 밑그림이 있는 가짜로 렘브란트 제자가 그린 모작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가짜라고 인정돼 카탈로그에서 조차 빠져 있던 뉘른베르크 소재 박물관에 있는 렘브란트 자화상은 서명이 없는데다 거침 없는 붓놀림이 뚜렷해 진짜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뉘른베르크 소재 렘브란트 자화상은 일약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명품으로 둔갑한 반면, 200년 넘게 진본으로 취급 받던 헤이그 소재 그림은 소장 가치 조차 없는 것으로 전락했다.


평범한 물건이 국보급 보물 되기도

미술품 감정은 흔히 ‘그 작품의 운명을 결정 짓는 일’이라고 말한다. 예술 작품의 가치나 진위(眞僞) 판정 자체가 힘든 작업일 뿐 아니라, 감정 결과에 따라 그 작품의 운명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자화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평범한 작품이 감정에 따라 수억원대의 국보급 보물이 되기도 한다.

고가 미술품에 대한 감정 논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숱한 논란을 빚어왔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초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두고 ‘가짜’라는 작가 본인의 주장과 ‘진품’이라는 미술평론가,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등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이 사건은 끝까지 결론을 못 내고 흐지부지 봉합 됐지만 국내 미술계에 큰 상처를 냈다. 1991년 한국화랑협회가 전원 일치로 진품으로 판정한 김한기의 ‘봄처녀’가 나중에 위작 작가가 검찰에 구속되면서 가짜로 판정 나기도 했다. 앞서 이 그림은 대구 모씨에게 무려 1억2,000만원에 팔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감정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 지는 위조 수법 때문이다. 고미술품 위조에 쓰이는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진품 위에 투명한 기름 습자지를 댄 뒤 목탄으로 밑그림을 카피한 다음 밑에 한지를 놓고 화필로 자국을 내 색칠하는 전형적인 베끼기 수법이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위작이 이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다음이 앞ㆍ뒷장 떼기 수법이다. 진품을 물에 불린 뒤 두 장으로 분리해 진짜가 아닌 진품(?) 2개를 만드는 수법이다.

두 장으로 분리한 그림 중 색칠이 희미한쪽 그림에 덧칠을 해 감쪽 같이 재생해 내는 것이다. 중국에서 수입했던 옥판 화선지의 경우 최대 3장까지 벗겨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낙관 바꿔치기, 환등기 베끼기 등의 다양한 수법이 사용되고 있다.


감정전문가 절대 부족, 이론 보다는 안목

최근 국내에서 근ㆍ현대 문화 예술품 수집 붐이 고조되면서 감정 오류로 인한 혼란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감정을 받은 뒤 수백만원을 주고 산 유고 작가의 그림이 몇 만원도 안 하는 가짜로 밝혀지는가 하면, 시골 허름한 골방에서 찾아낸 북한 삐라 한 장이 수십 만원에 팔리기도 한다.

문화 예술품에 대한 감정이 이처럼 들쭉날쭉하는 데는 국내에 공신력 있는 공인 감정 전문 협회가 없는 데다 실력을 갖춘 감정사도 적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근ㆍ현대 미술품을 제대로 감정할 수 있는 전문가는 통틀어 20여명에 불과하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사가 같은 이론가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아무리 이론적 바탕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별도의 감정 훈련을 통해 감식안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없다. 국내에서 비교적 감정을 잘하는 사람은 학자들이 아니라 고미술품을 실제로 자주 보고 접한 화상(畵商)들이다.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서 미술품에 대한 감정을 담당하는 곳은 고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 두 곳 뿐이었다. 고미술협회는 주로 19세기 이전의 고미술품이나 골동품을 감정하고, 한국화랑협회산하 감정위원회는 일제시대 이후의 근ㆍ현대 미술품 감정을 맡고 있다.

두 협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술품 감정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두 단체는 모두 비영리 사단법인 임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감정비를 받는가 하면 구성원 문제로 감정 신뢰도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때문에 투서가 잦은가 하면, 협회 회장이 바뀌면 그간 판정한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공인감정사 자격증제도 도입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현행의 문화 예술품 감정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몇 개 대학에 감정학을 신설ㆍ지원해 절대 부족한 전문가를 양성하고 자료를 집대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정부가 공인 감정사 자격증 제도를 도입, 고미술품을 포함한 문화 예술품에 대한 공인 감정 제도가 뿌리내릴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십 수백년 전에 사망한 작가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미술품 감정의 논란은 영원히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이다.

보다 진품에 가깝게 만들려는 모방 작가들의 노력, 그리고 이를가려 내려는 감정 전문가들의 싸움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감정 관행 정착이 필요한 이유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1/23 10:4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