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가락에 해빙무드 절로?

북한 매스게임 '아리랑' 상품화,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한 기여예상

“아리랑 보러 오시라요.”

북한이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4월15일)을 맞아 평양에서 공연하는 매스게임 ‘아리랑’을 보러 오라고 연신 손짓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일생을 두고 후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북한 관광총국의 외화벌이 일꾼들은 아리랑 홍보 포스터를 들고 중국과 일본에서 호객에 나섰다.

아리랑은 북한이 사상 최초로 상품화한, 그것도 대놓고 돈벌이에 나선 매스게임이다. 평양 능라도 5ㆍ1 경기장(15만명 수용)에서 4월29~6월29일(일요일 제외) 열리는 이 매스게임에는 10만명 이상이 출연하는 초대형 퍼포먼스이다. 사실 매스게임은 북한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유일한 품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80여편의 매스게임을 900여회 공연했고, 45개국에 창작을 지원한 ‘매스게임 강국’이다.

10만 명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펼치는 군무와 카드섹션은 고도의 전제주의 국가만이 연출할 수 있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황홀한 예술의 세계’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무장관도 2000년 10월 미사일 발사 장면이 연출된 매스게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남북관계를 뚫어라

남쪽에서도 ‘아리랑 붐’이 일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과 아리랑을 연계할 방안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아리랑이 정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것은 물론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성사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자체 행사로 돈을 벌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처음”이라며 “남쪽의월드컵 행사와 연계, 상호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남북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정부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남측 인사들을 아리랑 공연에 초청해 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 남측 관광객의 공연관람을 타진해왔다”면서 “북측이 공개적으로 이를 제의할 경우 지난해 8ㆍ15 방북단사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않는 선에서 긍정 검토할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리의 ‘아리랑 개방’ 조치에 북측도 호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아리랑에 대한 유화적 조치로 무기 연기된 4차 이산가족 행사와 쌀 지원 등을 논의할 2차 경협추진위, 중단 위기에 몰린 금강산 관광 관련당국회담 등을 재개, 6차 장관급 회담 결렬의 앙금을 풀겠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25일 서울서 열리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내달 19~21일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방한과 한미정상회담 때도 월드컵-아리랑 연계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 방침을 설명, 주변국의 동의도 얻을 계획이다.


서해 항로를 열어라

정부는 남측 인사와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아리랑 관람에 나설 경우에 대비, 다각적인 관광객 수송 방안을 검토중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월드컵 이전에 경의선을 개통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7일 “북쪽 (경의선 구간) 14㎞를 연결하지 못해 중국에 가지 못한다”면서 경의선 연결을 거듭 독려했다.

김 대통령의 언급은 중국측이 월드컵 관광객들을 평양을 거쳐 서울로 오게 하려고 북한을 재촉했다는 관측이 나온 상황에서 이뤄져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경의선 연결에 대한 북측의 태도가 아직 불분명한데다, 당장 공사를 시작하더라도 월드컵 이전에 마무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에 경의선 수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구체적인 사인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해법은 서해항로로 모아진다. 서울과 평양 순안공항을 연결하는 서해상의 남북 직항로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러 차례 이용됐다.

북측이 그 동안 감귤을 지원해준 제주도민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5월초 도민 150~300명을 남한 국적기 편으로 초청하겠다고 합의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제주-평양 직항로도 열릴 수 있다.

여기에 한 달에 수십 차례씩 화물선들이 오가는 인천-남포 항로에 아리랑관람객을 위한 여객선이 추가될 수도 있다.

북한도 직항로를 여는 방안에 긍정적인 듯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대남 관계자들이 남한 관광객의 아리랑 관람을 위해 서해 항로 개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방문한 남측 사업자들도 직항로 개방의 필요성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잔치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북측은 월드컵을 준비 중인 우리보다 더 분주하게 아리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 언론들은 “아리랑 손님을 맞기 위해 평양 고려호텔, 양각도 국제호텔 등이 손님맞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서 “손님들이 원하면 묘향산, 남포, 장수산, 구월산 등 다른 명소도 관광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베이징에 본부를 둔 범태평양 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가 운영하는 ‘조선인포뱅크’라는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해외 관광객 유치 대행사를 모집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아리랑 공연과 때를 맞춰 평양-나고야를 오가는 130명 규모의 전세기도 운항할 계획이다.

북한의 아리랑 안내문을 보면, 입장료는 300달러(특등석)에서 50달러(3등석)까지 4단계로 나눠져 있다. 북한은 아리랑과 연계된 관광은 철저히 관광객 자비 부담원칙을 제시했는데, 이는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 때 참가ㆍ체류 비용을 부담했다 국가 재정이 거덜나는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최근 방북했던 대북 사업가는 “북측은 과거 청년학생축전과 88올림픽의 관계를 의식해서 인지 아리랑이 월드컵의 ‘바람빼기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면서 “오히려 월드컵으로 남쪽에 오는 외국인들이 아리랑을 보러 올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남남 갈등을 막아라

그러나 아리랑-월드컵의 연계가 실현되기 까지는 상당한 난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8ㆍ15 평양축전처럼 행사 참가를 놓고 심각한 ‘남남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벌써부터 보수진영에서는 “남한 정부와 민간인을 이간질하려는 술책”, “월드컵을 망치려는 위장전술”이라고의 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관건은 아리랑의 내용이다. 아리랑이 2000년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 매스게임인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처럼 체제선전 일색이라면, 남측 인사의 관람 허용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초 ‘첫 태양의 노래’였던이 매스게임을 굳이 ‘아리랑’으로 개칭해 상품화한 것으로 미뤄, 민족정서를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아리랑은 6ㆍ15 공동선언의 생활력을 증명하는 통일의지이며,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라고 정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남측 관람객의 신변안전 문제는 외국인과 동일한 입장에서 접근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공연내용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준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1/23 14:54


이동준정치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