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대통령 취임 1주년, 시련딛고 우뚝선 '정치 행운아'

미 ABC방송의 정치해설가인 조지 스테파노풀러스는 조지 W 부시대통령에 대해 언급할 때 마다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라고 부르곤 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 만들기의 1등공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의 부러움섞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미국 43대 부시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행운아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텍사스 주지사 재선경력밖에 없는 부시가 아버지인 조지 부시전대통령의 후광으로 공화당 대선주자를 손쉽게 거머쥐더니 정작 대선에서는 총득표수에서는 지고도 대법원의 판결에 힘입어 백악관에 입성한 것은 하늘의 도움이라 할만하다.

뿐만 아니라 부시대통령은 집권초기 ‘법선(法選)대통령‘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더니 911테러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이제는 미 역사상 제2차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버금가는 ‘전시(戰時)지도자’로 거듭나는 저력을 과시했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 이끌어낸 '전시지도자'

그러나 20일로 취임1돌을 맞은 부시대통령의 지난 1년은 실상 너무나도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부시대통령이 취임후 부닥친 최초의 난제는 미 해군 EP-3정찰기의 중국 하이난섬 강제착륙 사건이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연부역강한 참모들의 도움으로 중국에 립서비스차원의 유감표명만을 하고도 기체와 승무원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성가를 올려 외교 문외한이라는 세간의 질시를 일거에 잠재웠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제임즈 제퍼즈 상원의원이 공화당을 탈당함으로써 상원에서 다수당을 민주당에 내주는 정치적 손실을 겪어야했다. 워싱턴 정치초년생인 부시대통령은 그러나 이 위기도 민주당 지도자들을 아우르는 초당적 국정운영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극복해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어 하계휴가가 끝나기가 무섭게 터진 911테러로 부시는 또 다시 위기에 내몰렸다. 건국이래 본토가 처참하게 유린당한 미증유의 테러사태는 가히 ‘제2의 진주만공습’과 비견될 만한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행운아답게 이 시련을 위기로 활용해 전시지도자로 거듭나는 저력을 과시했다. 피격 1주일만에 점퍼차림으로 세계무역센터 피폭현장을 찾아 희생자를 위로하고 복구반을 격려하는 헌신적인 모습으로 국민들의 애국심과 단결력을 고취시켜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911테러에 이어 속출한 탄저균테러로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처했지만 부시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내외에 선언하고 4주만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이 과정에서 부시대통령은 지상전은 반탈레반 병력을 앞세우고 미군은 공습 등 배후지원을 맡는 전략을 구사해 최소의 미군 인명피해만으로 탈레반정권을 무너뜨리는 개가를 올렸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일부 이슬람국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반테러연합전선을 무리없이 구축해내는 외교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테러참사위기를 성공적으로 추스르자 취임초 50%를 겨우 상회하던 부시대통령의 업무지지율은 90%선까지 치솟았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이후 대통령 가운데 단연 최고수준이다.


'텍사스출신 무법자' 비난 받기도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이 같은 성공가도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뒤따랐다.

국내적으로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부유층과 기업가 등에 대한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바람에 민주당의 반발을 샀다.

또한 알래스카 등 자연보호지역에 대한 원유채굴 허용을 추진하는 등 반환경정책을 지지해 환경론자들의 비난을 불러왔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위주의 일방외교정책을 밀어붙여 제3세계와 동맹국들로부터 경계심을 촉발시켰다. 부시대통령은 유럽연합 등 동맹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토기후협약 탈퇴,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비준 거부,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파기와 미사일방어(MD)체제 추진 등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부시를 일컬어 ‘텍사스출신 무법자’라는 비아냥이 제기됐다.

새해들어 집권 1/4분기를 넘어선 부시대통령의 앞날에는 지난해 못지않은 현안들이 산적해있다. 가장 최우선 과제는 대테러전쟁을 확전할 것인지, 확전할 경우 대상은 어느나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하는 문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개시, 대테러전쟁을 본격화해 탈레반정권을 붕괴시키고 알 카에다 테러조직을 대부분 궤멸시키는 사실상 승전을 일궈냈다.

그러나 미국은 공습과 함께 특수지상군을 투입하고도 탈레반 지도자 모하메드오마르는 물론 911테러의 주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 등 핵심지도부를 아직도 붙잡지 못하고 있다.

확전론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여론조사로는 미국민들의 70% 가까이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고 있다. 행정부 내에서도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이 확전론을 리드하고 있다.

그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 민주당 지도부는 동맹국들의 전폭적 지지와 승전에 대한 확실한 담보가 없는 한 섣부른 확전은 자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등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제적으로는 확전반대론이 더욱 거세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911테러의 배후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은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고 코피아난 유엔사무총장도 유엔 안보리의 지지가 전제돼야한다는 입장이다.

NATO동맹국 가운데서도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확전에 반대하고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대테러전쟁은 전세계에 산재해있는 테러조직을 발본색원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천명한 부시대통령으로서는 사실상 딜렘마에 빠진 형국이다.


경제난 해결이 최대 과제

부시대통령이 또 다른 과제는 악화일로에 있는 경제난이다. 경제난은 올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의 향배와 직결돼 있는 핫이슈다.

미국경제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지난해 11월 “2001년 3월부터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공식발표했듯이 불황국면에 처해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지난해 3.9%가 줄어 지난 19년사이 가장 큰 하락을 기록했고 지난해 12월 실업률은 최근 6년래 최고치인 5.8%를 기록했다.

지난해말부터 경제연구소 등이 미 경제가 올 상반기를 고비로 회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부시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경기부양책도 상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반대로 의회통과가 난망한 상태다.

또한 신년벽두에 터져나온 에너지 기업 엔론사 파산사태는 연일 부시행정부와 엔론사간의 유착의혹이 제기되면서 자칫 인기절정의 부시행정부를 일거에 추락케 할 판도라의 상자로 변모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엔론사태는 부시대통령을 비롯 부시행정부의 주요각료와 백악관참모, 의회지도자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데다 무려 35명의 고위관리들이 엔론사의 주식을 보유했던 사실 등 정경유착의혹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시대통령이 올해 넘어야할 고지는 중간선거전이다. 4년임기의 미국 대통령 집권 2년차에 치러지는 중간선거는 국민들의 행정부 견제심리 때문에 거의 예외없이 집권당이 패하곤 했다.

올해의 경우에는 상원 34명과 하원 435명 전원 및 주지사 36명이 새로 선출된다. 정치분석가들은 제시 헬름즈, 필 그램상원의원 등 원로들이 대거 은퇴하는 바람에 전력차질이 큰 공화당이 약간 고전하겠지만 테러사건 이후 국민들의 지지율이 급등한 만큼 현상유지는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입력시간 2002/01/23 18:2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