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석유권력'

■ 컬러 오브 오일
(마이클이코노미데스, 로널드 올리고니 공저, 강대은 옮김/산해 펴냄)

미국의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공격은이 지역 횡단 송유관 건설을 무산시킨 탈레반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이 다음 공격 목표로 삼고 있는 국가들도 석유 자원과 관계가 깊다….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또 미국 뉴요커지는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그럴 경우 2년 동안 세계 석유 공급이 교란되고 석유 가격은 배럴 당100달러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보고서를 보도했다.

이 책은 석유가 갖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인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공동 저자인 대학 교수 출신의 석유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이코노미데스와 휴스턴대 공학연구소장인 로널드 올리그니가 하고 싶은말은 분명하다.

그들은 서두에서 석유는 단순한 물질도, 에너지 자원도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석유는 바로 권력이다. 석유 권력을 쥐기 위해 숱한나라들이 피를 흘려 왔으며, 그 충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석유는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위해 1, 2차 세계대전과 대표적인 석유재벌 록펠러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석유와 권력은 동의어이기 때문에 여러 빛깔을 띤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석유는 원래 검다. 변화무쌍한 물리적 성질을가진 수 많은 화합물의 혼합물로서 모든 빛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학적인 분석은 중요하지가 않다. 여러 가지 빛깔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는 석유의 첫번째 색깔은 핏빛(BLOOD)이다. 붉은 색인 것이다.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서 죽은 수백만 명이 흘린 피 색깔만큼이나 붉다. 그 모든 전쟁의 원인과 경과의 한 복판에 석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오로지 석유만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이 말과 인간(기마병)과 경쟁했고, 전쟁이 끝나기 전에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장갑차와 새롭고 강력한 비행기가 등장했다. 전쟁에서 가장 지배적인 차원은 석유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전쟁에 나섰던 것은 근본적으로 석유 때문이었고, 항복한 이유는 원폭이 아니라 석유 부족 때문이었다.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도 결국 석유 때문이었다. 스탈린의 지시로 유정을 파괴했고, 석유 보급을 받지 못한 독일 군대는 싸울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묘사하는 석유 권력을 둘러싼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석유를 이용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은밀하게 시행한 저유가 정책은 소련과 공산주의의 종말을 가져왔다.

석유는 소련의 믿을만한 외화 공급원으로는 거의 유일한 자원이었다. 그런데 저유가에다 스타워즈라는 무기 경쟁이 더해졌으니 공산주의는 해체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분석이지만,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걸프전이 쿠웨이트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미 오래 전에 ‘증명’된 것이다.

저자들은 지금이 미국의 세기, 팍스아메리카나가 된 것은 바로 미국이 석유의 힘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해 지배권을 확보해 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그 다음 색깔은 레드, 화이트, 블루다. 미국 성조기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석유는 가장 미국적인 산업이고, 그 대표선수가 록펠러라는 것이다.

또 다른 색깔은 그린이다. 당연히 미국 달러의 색깔이다. 그리고는 레인보우로 이어진다. 석유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경영을 가능케 하는 문명의 힘이다.

석유의 진정한 힘은 각국의 문화를 석유산업에 적합한 것으로 수정해 나가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엘로우가 되기도 한다. 석유와 석유산업을 둘러싼 국가와의 관계를 표현한 색깔이다. 마지막에는 어떤 색깔일까. 제왕의 빛깔인 자주(PURPLE)다. 에너지가 제왕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당연히 환경론자들을 싫어한다. 아니 저주한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의 환경주의는 지나치게 정치화했고, 에너지 산업이 세계 경제에 끼쳐 온 영향 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이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진실이 하나 있다. 미래에 탄화수소를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그린이라고 했다. 뚜렷한 자료도 없이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책 곳곳에서 눈에 띠는 단점이다.

또 하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읽는 도중 호흡이 자주 끊긴다. 번역자의 약력은 최대한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이상호

입력시간 2002/01/3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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