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홈쇼핑 중독] "하루라도 주문 안하면 불안해요"

TV앞에 앉은 주부들…무조건 사고 보는 중독증세

전업주부 전미선(35.가명)씨는 벌써 한달 넘게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다. 잉꼬 커플로 주위의 부러움을 받던 주씨 부부의 애정 전선에 이상이 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TV 홈쇼핑 사건 때문이다.

본래 주씨는 백화점보다 할인점이나 재래시장을 찾을 만큼 알뜰한 주부렸다. 그런데 지난해 초 아파트로 새로이사와 케이블 TV방송을 시청하면서 TV홈쇼핑에 흠뻑 빠져 들었다.

처음 무심코 보던 주씨는 일부 제품들이 재래시장 보다 싸게 나오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경품이 제공되고, 굳이 현장에 가지않고도 무료전화 한 통이면 집까지 배달해 주는 편리함을 몇 번 경험하고는 대부분의 물건을 TV홈쇼핑으로 구매했다.

얼마 전부터인가 주씨는 한시라도 TV홈쇼핑을 켜놓고 있지 않으면 '호기 좋은 물건을 놓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주부들의 필수 쇼핑코스, 중독증세 호소

주씨의 이런 중독증세는 갈수록 심해져 나중에는 남편이 잠든 후 거실에 나와 새벽까지 몰래 TV를 시청했다. 한손에는 TV리모콘, 다른 한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주씨의 행각이 남편에게 발각됐다. 아이들의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려던 남편이 아이들 장롱 속에 숨겨진 홈쇼핑 구매물건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수상쩍게 생각했던 남편은 이 사건을 계기로 거실에 있는 TV를 안방으로 옮겨놓고 주씨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주씨의 홈쇼핑 중독증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씨는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을 고려중이다.

TV홈쇼핑이 무서운 속도로 안방을 점령해 가고 있다. 7년전 슈퍼마켓 매출규모에 불과했던 TV홈쇼핑이 이제는 백화점을 위협하는 거대 유통의 한 축으로 급성장, 국내 유통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TV홈쇼핑은 이미 주부들의 필수 쇼핑코스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 최근에는 중독증세를 호소하는 주부들까지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1995년 8월 출범한 국내 TV홈쇼핑의 성장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 해 5개월간 2개 TV홈쇼핑업체의 총매출은 3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6년 330억대로 10배가 늘더니 매년 초고속 성장을 거듭, 2000년에는 1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도 2조원대를 넘어 섰다.

지난해 말 현대홈쇼핑, 우리홈쇼핑, 농수산TV 등 3개 신설사가 가세, 올해 TV홈쇼핑 시장을 4조원을 넘어 설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선도업체인 LG홈쇼핑이나 CJ39쇼핑의 하루매출 규모는 이제 롯데백화점 같은 메이저 백화점의 서울 지점 3개와 맞먹는 수준에 올라와 있다.

TV홈쇼핑의 급성장 배경으로는 쇼핑의 편의성과 경제성을 꼽을 수 있다. TV화면으로 안방에서 편리하게 상품을 고르고, 그것을 집에서 배달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기존 유통업체와는 분명 차별화된 서비스다.

생산자와 소비사를 바로 연결하는 직거래 시스템을 활용하기 때문에 가격도 백화점 들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여기에 각종 경품 제공이나 최장 10개월까지 신용카드 무이자 해택을 주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충동구매 자극하는 상술에 부작용 속출

하지만 최근 들어 업체간 판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의 충동구매를 자극하는 갖가지 상술이 등장, 후휴증을 낳고 있다. TV홈쇼핑의 생명은 '단시간에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파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각 방송사는 외국인 모델 등장, 경품 및 사은품 제공, 할인혜택등 각종 프로모션 방법을 총동원 한다.

홈쇼핑사들은 판촉을 위해 프로그램을 이끄는 3대 축인 PD, 쇼핑 호스트(쇼 호스트라고도 함.), MD(상품 구매 기획자·Merchandiser)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피브를 제공한다. 연봉 1억원을 초과하는 쇼핑 호스트가 생기는가 하면, 모 방송사의 경우 목표 실적을 초과하면 그 자리에서 즉각 현찰로 포상하는 즉시 시상제까지 실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방송에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구매 충동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구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홈쇼핑 방송에는 '주문폭주', '마감 1분30초전','마지막 경품 기회'등의 자막과 함께 진행을 맡은 쇼핑호스트들이 "주문이 몰려와 물건이 몇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전화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 하십니다"라는 독려 멘트가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상품의 인기를 간접적으로 알려 소비자들의 구매 충동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의 방법이다. 여기에 현금가 무이자 할부, 경품 제공 등의 미끼를 추가함으로써 소비자들로 하여금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TV홈쇼핑을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과다 구매를 하는 이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유혹에 빠져 정신적인 중독증세까지 보이는 홈쇼핑 중독자들이 점차 늘고 있고, 이로 인해 가정 불화를 겪는 부부들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주부들은 TV홈쇼핑 모니터 계 모임까지 만들어 좋은 상품이 나오면 전화 연락을 하며 단체로 구입하기도 한다.


시청시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

미혼 여성인 조수진(32.가명)씨는 모 TV홈쇼핑 콜센터 직원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손님으로 통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서 소일하고 있는 조씨는 지난해 7개월동안 한 TV홈쇼핑사에서 무려 700여개의 물건을 주문해 화제가 됐다.

조씨는 온종일 이 홈쇼핑을 시청하면서 많게는 하루 10여개의 구매주문을 내는 등 닥치는 대로 물건을 구입했다.

조씨는 '너무 많이 주문하는게 아니냐"고 말하는 홈쇼핑 텔레마케터들에게 '하루 한번이라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하소연 할 정도로 심각한 중독증세를 보였다. 충동구매를 하다보니 자연히 반품도 많아져 조씨는 주문한 물품의 90%이상을 반품 처리했다.

홈쇼핑 업체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슈퍼바이저급 간부가 나서 조씨에게 구매 자제를 부탁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TV홈쇼핑의 한 관계자는 "국내 TV홈쇼핑이 도입된 지 얼마 안된 성장기에 있어 업체나 소비자나 모두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홈쇼핑 업체 입장에서도 무분별한 과다 구매는 대개 반품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충동구매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사이버정보조사팀의 이창옥 팀장은 "TV 홈쇼핑은 물건판매를 위해 정교하게 짜여진 한편의 완성된 마케팅 전략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욱 현명하고 차분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충동구매를 막기 위해서는 살 물건의 종류와 가격대를 미리 정해 놓는 것이 좋으며, 가급적 시청 시간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입력시간 2002/02/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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