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충북 단양 품달촌

품달촌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금수산(錦수山: 1,016m) 아래 골짜기로서 윗말(上里), 아랫말(下里), 가마실(玄谷里), 텃골(基洞里)에 걸쳐 있는 긴 골짜기를 통틀어 말한다. 그림바위가 있는 금수산 아래에 자리해 경치좋기로 이름이 나있어, 풍수지리(風水地理)상 ‘정감록(鄭鑑록)’에서 말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혀 오던 곳이기도 하다.

예부터 명현(名賢)이 많이 나고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이 많아 당상관(堂上官) 마을, 즉 품달촌(品達村)으로 불려지게 됐다.

품달은 당상관에 오를 때 나타내는 푯대(보람)을 품켜(品階)라 하는데, 품갓, 품띠, 품등, 품옷, 품자리, 품패 들을 가지고 자리에 깔고 몸에 달고 쓰고 입고 차고 두르고 들고 지니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품달’은 머리에 짐을 이고, 어깨에 등걸을 메고, 등에 짐을 지고, 허리에 칼을 차듯이, 두팔로 한 아름, 두 아름, 세아름으로 넓이를 재며, 한 발, 두 발, 세 발로 길이를 재는 식으로 나랏일을 보살피는 한 품, 두 품, 세 품처럼 셈하듯 차례를 별러 그 ‘품’으로‘달아 잰다’는 뜻이다.

신라의 임금이 겨레에서 뼈품(骨品)으로 한뼈(聖骨), 참뼈(眞骨) 또는 한뼈골(聖骨髓)과 참뼈골(眞骨髓)의 몫을 쳤고, 여섯머리품(六頭品), 세머리품(三頭品), 한머리품(一頭品)들로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의 셈머리 품을 쳤다.

또한. 가슴속, 품속, 할 때의 ‘품’과 가슴과 옷 사이의 ‘달’을 이름함과 동시에 나랏일의 무거운 책임을 가슴에 ‘품’는 섬서 흐레의켜(層階)를 ‘달’아 잼을 뜻한다.

품달촌은 행정동 이름이라기 보다는 풍류의 공감대를 뜻하는 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품달말 안에 여러 마을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말로 열 두 품달(12品達)이라 하는데 이는 곧 현곡리의 가마실, 세원리:하리의 전반이(인두판), 가맛골, 떡가루목이, 노가태:상리의 하원, 먹돌골(黑石洞), 논길, 새터, 상학:기둥리의 곧은티등을 합해 열 두 마을이다.

이 경우, ‘달’은 아사달의 ‘달’과도 비길만 하나, 이 열두품을 열 두개의 벼슬이름 하나하나에 품격을 붙여 한품, 두품, 세품들의 차례를 매겼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의 으뜸마을이 ‘품실’이고 청원군의 문의면‘품곡’리가 있다.

또, 경북 영덕군 ‘지품(智品)’, 울진군 온정면의 ‘광품(廣品)’리가 있다. 이 품실과 품곡리, 지품, 그리고 광품리는 땅모양이 아늑하며 사람의 ‘품’처럼 생겼다고 하여 우리말로 ‘품실’이라하는바 이를 소리옮김 한 것이 품곡(品谷)으로 보르는 이유다.

‘품’이라는 말은 ‘품삵, 품앗이, 품팔이’ 등으로도 흔히 써 오는 말이니, 구태여 품(品)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고려 원종(元宗)때의 명신으로 성균제주(成均祭主)를 제수받았고 ‘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듯 불어 간데 없다…’라는 시조를 쓴 우탁(禹倬)선생과 조선조 영조(英祖)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냈고 명필로 더 잘 알려진 유척기(柳拓基)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우탁과 유척기 두분이 태어나 2품달은 되었으나 아직 3품달에 이르지 않았으니 언젠가는 3품달이 될 것으로 땅이름을 믿고 살아가는 이 고을 사람들!

단양8경 가운데 하나인 사인암(舍人岩)도 우탁이 ‘사인(舍人)’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이 바위에 자주 올라 풍류를 즐겼으므로 그의 벼슬 이름을 따 사인암(舍人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입력시간 2002/02/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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