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산책] 김마리아, 민족혼에 대한 자각과 여성해방 운동

김마리아(1892~1944)는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여성계몽운동가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간단하고 단순해서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노영희 동덕여대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최근 ‘한림대 일본학연구 제6집’에 쓴 논문 ‘김마리아, 민족혼에 대한 자각과 여성해방 운동’은 애국자 김마리아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시도한 글이다.

출생과 성장과정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살펴보고, 그가 주장한 민족혼과 여성 계몽운동에 대한 현재적 평가를 모색하고 있다.

김마리아는 한마디로 ‘불굴의 투지로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진정한 애국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도산 안창호는 1923년 “김마리아같은 여성동지가 10명만 있었던들 한국은 독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그는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도 신뢰를 받았다. 심지어 그에게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안겨준 당시 일본 검사도 “너는 영웅이다. 너보다도 너를 낳은 네 어머니가 더 영웅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마리아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처음 뿌리를 내린 황해도 장연 구미포의 소래(송천)마을에서 세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총명하고 강직한 기백을 갖춘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고조부인 김성첨은 소래 마을을 개척한 지도자였고, 아버지 김윤방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특히 김윤오, 김필순 등 삼촌들은 항일 애국지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이 같은 주위환경은 김마리아가 삶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공부한 정신여학교는 민족성과 민족정신을 계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13년 모교 정신여학교의 교사가 된 그는 미국인 교장의 추천으로 1년 만에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18년 ‘동경유학생 독립단’에 가담한 그는 굳은 의지와 활발한 활동으로 많은 후원자를 얻기도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의연한 말과 행동으로 오히려 심문자들을당혹시켰다. 1919년 도쿄에서 감행된 ‘2ㆍ8 독립선언’으로 연행됐다 풀려난 그는 즉시 밤을 새워가며 독립선언문을 복사, 2월15일 이것을 조국으로 운반했다.

일본여성이 입는 기모노 차림으로, 허리띠에 독립선언서 복사본 10여장을 숨긴 채 귀국한 것이다. 조국에서 3ㆍ1 운동으로 다시 체포된 그는 “독립운동이 어찌 죄가 되느냐”며 심문자를 호통치는 등 민족운동가의 기상을 꺽지 않았다.

그는 5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가석방됐지만 잔혹한 고문으로 몸속 깊이 병이 들어 평생을 고생했다. 석방 후 정신여학교에서 다시 교편을 잡게 된 그는 ‘대한애국부인회’ 조직을 비밀리에 추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펼치려고 했으나 배신자의 밀고로 3개월 만에 다시 체포됐다.

재판결과 3년형을 받고 수감 중에 죽음에 이를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다시 병보석으로 나온 그는 비밀리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때가 29세 때인 1921년이다.

중국과 미국 등 망명지에서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주도하는 등 애국활동을 계속했던 그가 다시 귀국한 것은 1933년. 그는 서울 체류를 불허하는 일제의 조치에 따라 원산에 있는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성경학과 이외에는 가르칠 수 없다’는 등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등 항일의 의지는 꺽지 않았다. 해방을 1년 남짓 앞에 둔 1943년 3월13일, 그는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며 숨을 거뒀다. 한국 정부는 63년 3월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을 추서했다.

’2ㆍ8 독립선언’ 당시 동지였던 이광수는 1933년 김마리아가 망명에서 돌아오자 그에게 시를 지어 바쳤다. ‘누이야’라는 제목의 이 시는 김마리아를 조선 여성을 대표로 기렸다.

‘누이야 네 가슴에 타오르는 그 사랑을/ 뉘게다 주랴 하오?/ 네 앞에 손 내민 조선(朝鮮)을 안아주오/ 안아주오!// 누이야 꽃같이 곱고 힘있고 깨끗한 몸을/뉘게다 주랴 하오? 뉘게다 주랴 하오?/ 네 앞에 팔벌린 조선에 안기시오 안기시오!/ 누이야 청춘도 가고 사랑도 생명도 다가는 인생이요/ 아니가는 것은 영원한 조선이니 당신의 청춘과 사랑과 생명을 바치시오, 조선에!’

노영희 교수는 “그의 민족에 대한 지대한 사랑과 애국주의를 다시 새롭게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철훈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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