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민심, 제대로 읽읍시다

정치권이 설 연휴를 맞아 귀향정치에 들어 간다. 1일부터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지만 4일과 5일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끝으로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이번 설 연휴에는 어느 때보다 정치문제에 대한 얘기가 무성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통령 친인척과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사건의 내막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민심이여간 흉흉해진 것이 아니다.

영남지역의 민심도 민심이지만 요즘에는 호남지역도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성난 목소리가 들끓는다고 한다.

“창피해서 못살겠다.” “우리들이 이렇게 화가 나는데 영남사람들은 어떻겠는가.” 호남지역 출신인사들이 줄줄이 비리에 엮인 것을 성토하는 목소리다. 호남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여당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을 어떻게 달래고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 하는 모습들이다.

설 연휴 후 경부선과 호남선을 타고 올라 온 지역민심이 중앙정치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여야 당내 경선레이스 본격화, 잡음 최소화가 관건

대선의 해인 만큼 대선 얘기가 빠질 수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유리한 구도라는 의견이 다수지만 12월 19일 대선 투표까지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이 변수들을 놓고 논란이 많을 것 같다.

대세론을 굳히고자 하는 한나라당 이 총재에게는 박근혜 부총재 문제가 큰 변수다. 박 부총재는 국민참여경선제 및 대선 전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자신이 이 총재의 들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정도는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부총재는 당내 경선 논의 기구인 ‘선택 2002 준비위원회’ 불참, 탈당시사 등으로 이 총재를 압박하고 있다.

이 총재로서는 박 부총재의 요구가 다소 과하다 싶어도 수용하고 넘어갈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이 총재 주변에서는 박 부총재의 요구를 다 받아들여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는 만큼 박 부총재를 안고 가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어차피 박 부총재가 탈당 명분을 쌓고 있는 만큼 밀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박 부총재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구ㆍ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약간의 세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당을 박차고 나가기는 어려울 듯 하다. 당내에서 동조세력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설 연휴에 대구ㆍ경북지역 민심의 흐름이 그의 결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월9일 제주에서부터 시작되는 민주당의 국민참여 전국 순회 경선도 관심거리다. 민주당이 우리정당 사상 처음 도입되는 국민참여 경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민주당 후보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선이 잡음 없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그리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소게임이 벌어진다면 국민의 관심을 크게 끌 것이 분명하다.

여론조사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이인제 고문과 노무현 고문의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 최근 약진세를 보이고 있는 정동영 고문이 어디까지 치고 올라 올지, 동교동계의 신파로 분류되는 한화갑 고문은 대선을 택할지 아니면 당권으로 선회할지 등등 흥미를 끌 만한 얘깃거리가 무수하다.

그러나 역풍의 소지도 적지않다. 무엇보다도 돈 경선의 우려다. 순회경선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경선주자들이 지구당과 대의원들에게 으례적인 모임만 갖는다 해도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모른다.

야당은 이를 걸고 들어가 벌써부터 돈 냄새가 난다고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또 동교동계 구파인 권노갑 전최고위원의 특정후보지원에 따른 불공정 시비, 김대중 대통령은 완전히 중립을 지킬 것인지 등을 놓고 논란이 심해지면 민주당이 기대했던 경선 시너지효과는 얻기 어렵다.


불씨 꺼져가는 정계개편론, 변수도 많지 않아

대선 전에는 늘 등장하는 정계개편론도 화제다. 최근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 안팎에서 제기됐던 3당 합당론은 일단 무산됐다.

민주당 내부에서 이인제 고문이 내각제를 고리로 한 3당 합당론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대선주자들이 대부분 정계개편론에 부정적이고 당내 개혁ㆍ소장파 의원들도 3당 합당론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민련과 민국당이 먼저 소통합을 추진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이것 역시 자민련 내부 반발에 따라 흐지부지되는 형국이다. 정계개편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를 추진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하나 현재로서는 그럴 만한 정치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 사퇴 후 정치에 초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권의 정계개편론이 뒷심을 받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이번에 대통령 정책특보로 청와대에 복귀한 박지원씨가 정계개편과 관련해 뭔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김 대통령이 정계개편등에 흥미를 갖지 않고 있으며 박 특보가 정계개편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는 순간 김 대통령은 국정운영이 힘들 정도로 언론과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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