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특집- 세시풍속] 초하루 새벽 "복조리 들어갑니다"

명절중의 으뜸 '설', 정월 대보름으로 이어지는 세시풍속의 달

설, 단오, 추석은 우리 민족의 3대 명절이다. 그 중 설은 명절중의 명절로 우리 민족 문화의 고갱이가 담긴 다채로운 세시풍속이 전해 온다. 설날을 맞아 우리의 정월 세시풍속을 살펴본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세시풍속조사연구서 ‘경기도 세시풍속’을 주로 참고했다. [편집자주]

우리 선조들은 설을 ‘일단의 잡사(雜事)를 중단하고 신성(神聖) 시간과 신성 공간으로 들어가는 대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다.

속세의 고운 정 미운 정을 떨쳐버리고 성스러운 세계로 들어가는 환세일(換世日)로 여겼던 것이다. 설의 주기를 정초부터 보름까지 정하여 15일까지는 근신하고 16일부터 인간 본연의 장, 곧 속세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 때문이다.

보통 정월 16일을 ‘귀신날’로 잡고 있는데, 이때부터 세속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귀신날’은 정초 보름동안 근신하며 편히 놀았던 하인들이 갑자기 일하기가 싫어서 꾀를 내 만든 날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민속놀이 또한 신성유희(神聖遊戱)이기 때문에 정초에는 소규모 개인 놀이인 윷점, 오행점 등이 주류를 이루다가 정월 대보름을 정점으로 지신밟기 등 대형놀이로 발전한다.

경기지방의 설날 풍속은 다른 지방과 별 차이가 없다.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한해의 운을 알아보는 놀이를 한다.

차례는 아침 해 돋을 무렵 지낸다. 대개 떡국차례이다. 세배는 집안어른에게는 차례를 마치고 음복(飮福ㆍ제사상에 올린 술이나 음식을 먹는 것)한 후에 드린다. 항렬이 높은 친척 어른에게는 성묘 후 세배를 한다.

동네 세배를 할 경우 가장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은 상가(喪家)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3년간 상청(喪廳)을 차려놓았기 때문에 이곳부터 먼저 세배를 드려야 했다.

한 해의 운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토정비결을 많이 본다. 생일과 나이를 써 주면책을 보고 운세를 봐주는 것이다. 토정비결을 보면서 널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정초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과‘모’로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하는 ‘윷점치기’가 있다. 윷놀이에서 ‘모’편이 이기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윷’편이 이기면 한해가 좀 어렵다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른다.

이밖에 정초에는 ‘안택고사’ ‘복조리달기’ 등의 풍속이 전해온다. ‘안택고사’란 시루떡을 쪄서 마루에 가져 다 놓고 고사를 지낸 후, 장독과 집안 여러 곳에 떡을 잘라 놓았다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한다.

또 ‘복조리 달기’는 동네 청년들이 정월 초 하루날 새벽 일찍 마을을 다니며 집집마다 복조리를 던져 놓고 가면 이를 주어서 문 앞에 걸어두는 것이다. ‘복조리 들어갑니다’라고 외치며 대문안으로 던지는데 복조리 값은 보름안에 와서 받아간다.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비싸지만 ‘복을 주는 복조리’이므로 가격을 흥정하지는 않는다.


쥐불놓는 쥐날(子日)등 '12일' 지키는 풍습

정초에는 ‘12지일’을 정해 지키는데, 소날(丑日)은 칼질을 하지 않고, 용날(辰日)은 물을 긷지 않으며, 쥐날(子日)은 쥐불을 놓으며 보낸다.

또 뱀날(巳日)에는 머리를 빗지 않으며, 호랑이날(寅日)에는 아침 일찍다른 집에 가지 않는다. 용날 물을 긷지 않는 것은 이날 물을 길으면 농사철 일할 때 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날 칼질을 하지 않는 것은 칼로 소를 잡기 때문에 소에게 해로운 일이 생길 것을 걱정해서 이고, 뱀날 머리를 빚지 않는 것은 뱀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다.

’환세일’을 맞은 사람들이 근신 끝에 세속으로 돌아가는 정월 보름을 전후해서도 다양한 세시풍속이 전해 온다.

우선 보름 전날인 정월 열사흘날에는 ‘뱀뱅이’, ‘밤새기’, ‘아홉번 행동하기’ ‘샘고사’, ‘오곡밥 먹기’ 등의 풍속이 있다. ‘뱀뱅이’는 피마자대를 왼새끼로 묶어서 집에 뱀이 들어오지 말라고 집안을 한바퀴 끌고다니는 것이다.

뱀뱅이가 끝나면 집에서 먼 곳에 가져가 버린다. ‘밤새기’는 열나흘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이고, ‘아홉 번 행동하기’는 ‘나무도 아홉 짐하고, 밥도 아홉 그릇 먹어라’라는 말에서 나왔다.

1년 열두달 부지런히 움직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또 ‘샘고사’는 문자 그대로 샘에서 지내는 고사이다. ‘마당밟기’를 하기 전에 지내는데 일년 동안 궂은 곳에 가지 않은 깨끗한 사람 3명을 제관으로 뽑아 거행한다.

‘오곡밥 얻어먹기’는 아이들이 오곡밥을 훔쳐먹는 것이 아니라 얻어먹는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곡식 까불릴 때쓰는 체를 갖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오곡밥을 얻어 먹는 것이다.

오곡밥을 얻어 먹고, 나무를 아홉 짐 하는 것은 내 재물을 불려 넉넉하게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정월 초순에는 여자들이 이웃집과 친정에도 가지 못하는데, 14일 날이 되면 ‘여자날’이라고해서 돌아 다니며 밤새 놀 수 있었다.


"내 더위 사가라" 더위 파는 정월 보름날

정월 보름날의 대표적인 풍속은 ‘부럼 깨물기와 귀 밝이술 마시기’, ‘더위팔기’, ‘용알뜨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보름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자마자 밤, 호도, 잣, 땅콩 같은 부럼을 깨문다. 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물면 이가 튼튼해진다고 한다.

귀밝이술은 아침밥을 먹을 때 어른들만 한잔씩 마신다. ‘더위팔기’는 내 더위를 남에게 파는 것이다. 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기 전에 밖으로 나가 더위를 판다. 친구를 보면 이름을 부르고, 대답을 들으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말하며 파는 것이다.

보름날 새벽에 우물을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을 ‘용알을 떠온다’고 한다. ‘용알뜨기’를 하면 그 해재수가 좋다고 전해와 부인들이 먼저 우물물을 떠오기 위해 전날부터 우물가에서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밖에 보름날에는 농악놀이, 줄다리기, 널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쥐불놀이, 홰싸움, 돌싸움 등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김철훈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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